‘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 제36조에는 이른바 국민보건권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에게 이 조항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의료시설과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도 국토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시설의 평균 접근성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난다. 서울 시민은 거주지에서 2.9㎞ 이동하면 응급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지방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강원도민의 경우 22.3㎞를 가야 응급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과 무려 20㎞ 정도 차이가 난다. 경북도 20.25㎞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의 특성상 농어촌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농촌 내 의료 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는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비율이 전체의 10.5%와 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 의료 환경이 열악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촌이 대도시에 비해 의료·복지 서비스가 열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도시로 사람과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의료 공백 문제를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로만 풀려고 하면 의료 공백을 넘어 ‘의료 진공’ 상태로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은 구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복지·교육·교통 등의 인프라가 갖춰질 때 비로소 탄력을 받는다.

임규현 < 농협창녕교육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