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美·中 패권전쟁, 승자 편에 서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초강대국 사이의 패권전쟁은 한국 같은 ‘미들 파워’ 국가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1980년대 미·일 무역전쟁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뜨는 일본, 기우는 미국’이었다. 밀려오는 일본 상품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일본을 무섭게 후려쳤는데, 첫 대상이 연비가 좋아 자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일본 소형차였다.

두 나라는 1981년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연간 165만 대로 묶는 수출 자율규제 협정을 맺었다. 이에 도요타, 혼다는 싸구려 소형차 대신 렉서스 같은 고급차를 개발해 수출했다. 당연히 미국 소형차 시장에 공백이 생겼고, 이를 한국의 포니가 뚫고 들어가 1986년 수출 첫해에 무려 30만 대를 파는 쾌거를 이뤘다. 다음은 미국의 일본 컬러TV에 대한 반덤핑 폭탄이다. 물론 고전하던 제니스 같은 가전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일본 제품을 막으니 엉뚱하게 ‘메이드 인 코리아’ 컬러TV가 미국 시장을 휩쓸었다.

역시 결정적 한 수는 미·일 반도체 싸움이다. 당시 NEC, 도시바 같은 일본 반도체가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런데 1986년 미국이 일본 팔을 비틀어 반도체 협정을 맺고 일본 반도체를 거의 초토화시켜 버렸다. 그 덕분에 후발주자로 고전하던 삼성전자가 기사회생해 오늘날 우리나라가 반도체 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같이 과거 우리 산업은 미·일 무역전쟁의 반사적 이익을 봤다. 그렇다면 지금 한참 격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전쟁에서 팔짱 끼고 가만히 있어도 과거와 같이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어림없다’이다.

과거 미·일 무역전쟁과 지금의 미·중 패권전쟁은 갈등의 폭과 깊이가 전혀 다르다. 과거의 갈등이 순수한 경제전쟁이었다면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 기술전쟁, 공급망 패권, 군사적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패전국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몽(夢)은 세계 패권을 꿈꾼다. 미국에 대한 경제적 도전을 넘어 이념전쟁으로 중국식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세계에 선전하고자 한다. 미국의 반격은 아주 단호하다. 무역, 투자, 기술 분야에서 전방위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해 중국 경제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아예 뽑아 버리겠다는 것이다.

과거엔 미·일 두 나라만의 다툼이었기에 우리는 방관자로 있어도 반사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편 가르기 싸움이다. 반중동맹에 선 일본, 호주, 인도까지 합세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과거와 달리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선택은 미·중 패권전쟁의 흐름을 잘 읽어 승자 편에 서는 것이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40%에 가까운 호주가 결연히 탈중국화하고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동맹)에 가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이길 승자, 미국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한때 ‘2030년 중국 패권론’이 대세였으나, 요즘은 ‘중국 경제 정점론’이 힘을 받고 있다. 자유무역체제 덕분에 중국이 미국 경제력의 3분의 2까지 따라 왔으나, 여기가 정점이고 이제부터 내리막이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건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어설픈 ‘늑대 외교’로 호주 석탄에 대한 무역제재를 한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자충수를 둔다. 그 덕분에 석탄 부족으로 전력대란이 와 오죽하면 애플 관련 중국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겠는가. 가뜩이나 짐 싸고 싶어 하던 외국 기업들의 중국 대탈출이 이어질 판이다. 중국을 ‘시멘트 경제’라고 부를 정도로 그간 내수를 단단히 뒷받침하던 것은 부채 주도형 부동산 경제였다. 그런데 이 역시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에서 보듯이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대통령의 방미 외교를 통해 미국과 반도체 등 핵심 분야에서 산업동맹체제를 구축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간 멀어졌던 일본과의 산업협력이다. 아직도 일본은 우리 산업에 필요한 탄탄한 기초기술과 뛰어난 부품·소재 산업을 가진 나라다. 다행히 한국을 잘 아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꼬인 한·일 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한(對韓) 핵심소재 수출규제도 풀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말했듯이 기업 차원에서 한·일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즘같이 국제질서가 요동칠 때 전략적 선택을 잘하는 나라에 기회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