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전의 경영과 과학] 스티브 잡스 타계 10년…그가 남긴 것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타계했다. 잡스는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애플2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컴퓨터 매킨토시 그리고 스마트폰 아이폰 등 3대 혁신 제품을 세상에 내놨다. 모두 아름답고, 쓸모 있는 핵심 기능과 적절한 가격을 붙인 덕이었다. 또한 3 대 7 수익분배형 디지털 플랫폼의 원형이 된 아이튠스는 오늘날의 스마트폰 앱 시장으로 발전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 아이팟을 들고 진입, 쓰러져가던 애플을 살리고 전화 기능을 넣어 결국 아이폰을 성공시켰다.

그가 성공만 한 건 아니다. 시리아 출신 유학생 아빠와 미국인 대학원생인 엄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본인도 사생아 딸이 있었다. 자신이 생부임을 부정하는 중에도 딸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붙인 컴퓨터 리사를 출시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선 이사회의 결정으로 쫓겨났다. 두 번째 창업한 회사 넥스트의 컴퓨터 제품 사업도 실패했다. 죽기 직전 발표한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시리(siri)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설상가상으로 과장 광고로 집단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사의 실패는 매킨토시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하드웨어 부문을 포기한 회사 넥스트에서 남겨진 소프트웨어는 오늘날 애플의 컴퓨터 제품군 운영체제인 맥OS와 iOS의 근간이 됐다. 실패작 시리는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의 어시스턴트, 삼성의 빅스비 등 모방 서비스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미국은 자동차에 이어 컴퓨터도 일본에 시장을 뺏겼을지 모른다. 개인용 컴퓨터(PC)는 여전히 투박한 기계로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동전화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통신사업자들과 하드웨어 제조사의 허락을 맡아야만 출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제록스 팰로앨토 연구소에서 개발한 마우스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연구원들만 쓰는 제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음악가들은 자신이 만든 창작의 대가를 받지 못해 음악의 길을 포기했을지 모르고, 음악 애호가들은 공짜 음악을 찾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음악을 다운받는 삶을 살고 있었을 수 있다.

잡스는 왜 아이폰을 출시했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들은 아이폰이 아이팟의 진화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가 아이폰을 출시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팟 매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애플은 승승장구하던 아이팟의 매출이 떨어지자 그 이유를 분석한다. 사람들이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대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안 잡스는 아이팟으로 만족하지 말고 아예 휴대폰을 만들자고 결심하게 된다. 아이폰은 세련된 제품 진화 전략과 계획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회사 매출에 민감했던 경영진이 매출 부진의 이유를 찾고 현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럼 아이폰이 갖고 온 최대의 혁신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터치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대 혁신은 앱스토어다. 소프트웨어 시장 개방화를 통해 산업과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불러왔다. 잡스는 앱스토어를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그는 아이폰에 들어가는 앱을 모두 애플이 독점 개발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사회의 끈질긴 설득에 백기를 들고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출범시킨 것이다.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앱스토어를 통해 부자가 됐다. 앱스토어는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것이다. 그가 계속 고집을 부렸다면 말이다.

어쩌면 잡스는 혁신의 대명사라기보다 ‘혁신의 행운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혁신은 한 사람의 영웅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출에 민감한 회사의 분위기, 그리고 이사회가 그 유명하고 위대한 CEO를 설득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문화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 그는 한 명의 위대한 창업가, 디자이너, 경영자였지만 그 성공과 혁신은 매출에 민감한 경영 프로세스, CEO를 설득할 수 있는 조직 문화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그의 10주기를 기념하며 같이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