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불량국가 제대로 다루는 법
중국에 전력 부족 날벼락이 떨어졌다. 곳곳에서 대규모 단전(斷電)이 잇따르면서 기업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력난이 중국 경제에 주는 충격이 헝다 사태보다 클 것”이라고 했고, 국영 전력회사가 “이젠 정전(停電)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삭제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중국의 갑작스런 전력난 원인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금지 조치가 꼽힌다. 중국은 전력의 70% 가까이를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 석탄의 절반을 차지하던 호주산 반입을 지난해부터 중단했다.

호주 정부와 코로나 사태 책임론 등으로 갈등을 빚자 실력행사로 압박했던 건데, 제 발등을 찍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콜롬비아 등의 석탄을 쓰면 되겠거니 했지만, 운송료 품질 등 모든 면에서 대체품이 못 됐다. 호주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중국의 행패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던 인도 등이 석탄 수입을 늘려준 덕분이다. 호주는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중국 시장에 의존한다. 미국 영국과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면서도 한국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국가로 꼽혀왔다. 이 틈을 파고든 중국 정부가 호주에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이다. 난데없는 전력난은 국가 간 교역을 호혜(互惠)가 아닌 일방적 시혜(施惠)로 착각해온 중국 정부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업보(業報)다.

호주가 중국에 새기게 한 교훈은 ‘석탄 자충수’만이 아니다. 보름 전 미국·영국과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오커스 동맹’을 체결하면서 더 큰 한방을 날렸다. 프랑스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미국산 핵추진잠수함을 들여오기로 하는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주의 동맹’을 확실하게 구축했다. “오커스 결성은 1956년 수에즈운하 사태,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세계에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될 것”(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주가 내린 이번 결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의 도발적인 ‘전랑(戰狼·싸움꾼 늑대)외교’ 앞에 더는 움츠러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3년 전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는 중국 외교 전략의 실상을 ‘3C’라는 말로 고발했다. 상대국가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매수해 친중(親中)으로 세뇌하는 비밀(covert)·부패(corrupt) 공작과 함께 꼽은 게 힘을 앞세우는 강압(coercive)이었다. 지난해 남중국해 분쟁 등을 놓고 미국과 대립을 본격화하면서 자유주의 동맹의 ‘약한 고리’를 끊으려는 3C 공작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범 대상으로 꼽은 호주에 석탄에 이어 곡물 와인 등으로 수입규제 품목을 늘린 뒤 ‘시정해야 할 14가지’ 리스트를 내놓고는 “과오를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개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호주가 중국의 겁박외교에 정면대응을 선택한 것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엿새 전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공세적 외교는 당연하다”며 “(다른 나라에는 몰라도) 아직은 우리에게 강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북한 견제를 위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트집 잡아 한국에 온갖 경제보복 조치로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도 ‘당연하다’ ‘강압적이지 않다’고 읽히는 발언을 쏟아냈다. 약한 모습,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파고들어 노리개와 먹잇감으로 삼는 게 중국 ‘전랑외교’의 특징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밀면 밀리는’ 외교 행태가 북한에 대해서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존엄을 뭉개는 북한 권력자들의 연이은 조롱과 막말, 안보를 위협하는 미사일 도발에 침묵을 지키다가 조금 곁을 열어주는 시늉을 하자 반색하고 있는 요즘 모습을 정상이랄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 혈세로 지은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멋대로 폭파했을 때도 입을 다물고 있더니 “연락사무소 재개를 비롯한 대화 용의가 있다”는 말을 “무게 있게 받아들인다”는 정부가 괜찮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