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항복함에 따라 수도 카불을 탈출하려는 수많은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공항 모습은 베트남 패망 직전 ‘사이공 탈출’을 방불케 했다. 먼저 항공기에 타려고 트랩에 매달리고, 추락사한 사람도 있어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 분열이 어떻게 국민을 생지옥으로 몰아넣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적 장면이다.

순식간에 무너진 아프간 정부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미국이 아프간 군에 지원한 87조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서류상 병력은 30만 명인데 간부들이 봉급을 가로채려고 ‘유령 군인’을 만드는 바람에 실제로는 6분의 1밖에 안 된다니 어이가 없다. 탈레반에 무기를 판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부터 해외로 도망치면서 막대한 현금을 헬기에 다 못 실어 일부는 활주로에 남겨뒀다니, 나라 꼴이 어떤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미군이 빠지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아프간의 교훈은 명확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서 싸우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스스로 지킬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 나라는 동맹이라도 손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정부 들어 안보의 기둥인 한·미 동맹은 약화됐고, 친북·친중 노선은 되레 강화됐다. 북한 핵·미사일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마당에 허망한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북한의 도발에는 경고 한마디 못 하고 대화를 구걸하다시피 했다. 한·미 훈련은 4년째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면서 형해화되는 판이다. 그마저도 북한 김여정이 중단을 요구하자 여권 의원 74명이 연판장을 돌리며 화답했으니 대체 안보의식이 있는가 싶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여당은 작년과 올해 추경 편성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증액을 위해 북한 도발 억제의 핵심인 F35 스텔스기 등 주요 전략무기 예산을 2조3000억원 삭감했다. 국민 생명을 지켜줄 안보가 뒷전으로 밀렸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육·해·공 전군에 걸쳐 성추행 파문이 잇따르는 등 군 기강도 바닥에 떨어졌다. 미국의 한 안보전문가가 “한국도 미국의 지원 없이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수준의 안보의식이라면 빈말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