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의 신용대출 죄기에 나섰다. 새로운 규제 조치는 개인의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 이하’로 낮추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금융소비자들의 대출 여력이 지금보다 절반으로 줄어든다. 문제는 개인 금융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이런 중요한 조치가 또다시 형식도 모호한 ‘가이드라인’으로 슬그머니 시행된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에 상급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있다는 점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금감원이 은행 여신담당 임원을 불러모아 전달한 이번 신용대출 한도 축소 요구도 겉으로는 ‘요청’이다. 전형적 ‘구두 지도’지만, 금융회사 생살여탈권을 쥔 금감원 지침을 외면할 수 있는 은행이 어디 있겠나. 민간 은행의 지주회사라도 되는 듯한 이런 간섭으로 금융업계의 경영 자율성·독립성은 물론 대외경쟁력까지 저해하는 해묵은 관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안타깝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 1040조원(7월 말)에 달하는 데 대한 우려나 경고에는 수긍 가는 측면도 있다. 한은의 금리인상이 임박해 가계대출 총량 제한 움직임이 가시권에 든 것도 사실이다. 주택시장과 주식·코인시장에서 20~30대 ‘빚투’ 등을 보면 급증한 부채에 대한 경각심과 합리적 대응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출을 부추기고, 부채에 대한 경각심을 앞장서 없앤 주체는 누가 뭐래도 정부다. 세계적 저금리 기조에 편승해 무분별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하며 거침없이 돈을 푼 것도, 빚더미 나라로 만들어버린 것도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6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를 4년여 동안 1000조원 이상으로 늘리며 자산시장에 거품을 키웠다. 그러면서 가계부채만 틀어막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는 백약이 무효인 집값 상승세에 신용대출까지 틀어막겠다는 의도겠지만, 서민·중산층 실수요자의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더 조일 여지도 없는 담보대출 시장의 거미줄 같은 규제에다 신용대출까지 막히면 급여소득이 적거나 현금이 부족한 금융약자들의 어려움만 가중될 것이다.

감독당국이 일을 쉽게 하려 든다. 신용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대출이 줄어들게 된 수많은 무주택 서민들 처지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신용대출 한도가 ‘연소득 2배’인 현행 규제도 불과 8개월 전에 만든 것이다. 풍선효과로 실수요자들은 제2금융권으로 떠밀리면서 이자 부담만 늘어나게 생겼다. ‘규제 위주 금융감독이 아닌, 유연한 지원 서비스’를 내세웠던 금감원장의 첫 조치가 이렇다면 실망을 넘어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