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기어코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그는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할 것”이라며 대선 독자출마 가능성을 시사해 야권 통합이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며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천명했던 강력한 합당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가 여전히 절반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국민 기대에 역행하는 허탈한 결말이다. 이번 대선은 나라 미래를 두고 철학이 판이하게 다른 양 진영 간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대하다. 4년여 동안 봐온 정책폭주를 이어갈지, 반대 길로 갈지에 대한 국민 뜻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선 야권의 단일대오 형성이 필수다. 두 야당 대표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대선 장(場)을 제공해야 할 기본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제1야당 대표를 ‘철부지’ ‘애송이’라 부르고, 통합 상대를 “친일몰이를 넘어선 전범몰이”라고 받아칠 때부터 예견된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단순히 합당 무산을 넘어 양측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갈라선 모양새다. 감정 싸움으로 시대적 소명을 그르친 야당 대표들의 협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자기 정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당내 토론회’가 뭐라고 대표와 당 유력 대선주자가 서로 싸우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당 대표는 정권 창출이란 최종 목표로 안내하는 선장격이다. 설사 후보 측이 표 욕심에 무리수를 두더라도 세심하게 조율하고 후보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마땅하다. SNS에서 후보 진영을 향해 조롱 섞인 독설을 쏟아내 얻을 것은 얄팍한 자존심 외에는 없다.

이 대표가 고등어 멸치 돌고래 하이에나를 등장시키며 ‘동물의 왕국’에서 생존하느라 바쁜 사이, 당내 주자들은 여당 공격에 비틀거리고 있다. 최재형 후보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 대표 지원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최 후보는 시의적절한 담론을 내놓고도 ‘무책임한 정치인’이라는 정략적 비난에 단기필마로 맞서야 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대선 여론조작 의혹, 백신 수급 차질, 청주 간첩단 사건 등 굵직한 이슈도 SNS 말싸움에 묻혔다. 야권이 또 지리멸렬을 거듭하다가는 이 정부의 소위 ‘야당복(福)’만 강화시켜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