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우리는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무심하게 쓰는 이 용어는 사실 무서운 혁명적 변화를 의미하는 충격과 공포의 단어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일상이 새롭게 정의되고 그래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끔찍한 상황이 현실이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뉴노멀을 준비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류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들고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했고 기존의 문명을 혁파하는 거대한 문명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구에는 디지털 신문명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됐다. 급변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문명의 코드를 읽어보자.

표준 인류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대~한민국!’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보고 응원하는 게 노멀이 됐다. 모든 경기를 스마트폰으로 감상하고 혹시 놓치더라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응원도 달라졌다. 온 국민의 응원 메시지와 하트가 SNS를 타고 선수에게로 실시간으로 날아간다. 스마트폰이 탄생한 지 불과 십수 년 만에 인류는 모두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이제 지구 위의 표준 인류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며 디지털 문명을 적극 활용하는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다.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또는 줄여서 사피엔스로 부르기도 한다. 사피엔스의 뜻은 ‘슬기롭다’인데 생존과 번성이 중요한 생물학적 관점에서 멸종의 위기를 넘기고 생존과 번성을 이룬 인류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운석 충돌에 의한 빙하기를 겪기도 했고, 페스트 창궐로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24종의 호모 종족은 엄청난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해 모두 멸종한 반면 사피엔스만이 70억이 넘는 인구로 거대 문명의 번성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 인류가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생존에 유리한 변화라면 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우리 DNA의 속삭임에 응답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생존과 번성을 위한 지난한 투쟁의 연속이다. 그 흐름에서 뉴노멀의 등장을 읽어야 한다.

저녁 7시 이후 유튜브 57% vs TV 28% 시청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한 인류, 상상의 신세계가 열렸다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이야기]
표준 인류가 바뀌면 모든 문명의 표준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이제 지구인은 택시 대신 우버를 타고, 호텔은 앱으로 예약하며,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사고, 귀가하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SNS에 심취한다. 데이터를 보면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국민 57%는 저녁 7시 이후 유튜브를 시청한다. TV 시청은 그 절반인 28%에 불과하다. 이제 대한민국 표준 방송 플랫폼은 유튜브다. TV는 50대 이상을 위한 소수자 보호 프로그램이다. 국민 70% 이상이 스마트폰 뱅킹을 활용하고 있다. 금융도 디지털 뱅킹이 표준이고 유통도 디지털이 표준이다. 그러는 사이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100조원 기업이 됐고 아마존은 월마트의 가치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유튜브는 전 세계 표준 방송으로 자리잡았고 비디오 대여사업을 대체한 넷플릭스는 26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폭풍 성장했다. 인류의 생활공간이 불과 십수 년 만에 디지털이라는 신대륙으로 이동한 것이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류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지난 10년간 디지털 문명을 창조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신문명을 읽어낼 수 있다. 인터넷은 인류에게 새로운 대륙의 발견이자 세계관의 확장을 가져온 혁명적 사건이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 5대 기업 반열에 오른 이들은 디지털 신대륙의 문명을 창조한 기업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대륙을 식민지화하며 힘을 축적한 뒤 세계 문명을 서구화한 역사에서 읽을 수 있듯 인류에게 세계관의 확장과 신대륙의 경영은 엄청난 기회가 된다. 식민지 개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유럽은 18세기 다시 기술 혁신의 산업혁명을 일궈내며 세계 문명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인류 표준 문명의 대전환기에 생존을 위한 슬기로운 변화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피엔스 역사가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다.

BTS·ARMY가 보여주는 새로운 문명 세계의 권력체계

디지털 신대륙의 세계관은 확연히 기존 문명과 다르다. 그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청년 아티스트 BTS다. 2013년 데뷔한 BTS는 자본이 빈약한 빅히트 소속이었고 그래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무대는 SNS였다. 유튜브를 통해 팬들을 만났고 인스타와 트위터를 통해 팬덤을 확장했으며 오직 실력만으로 평가받겠다는 진정성으로 무장했다. 소통 방식도 달랐다. 연습하는 과정, 땀 흘리는 모습, 외롭고 힘든 순간까지 팬들과 공유하며 함께했다. 그들은 자본의 힘보다, 방송의 힘보다 SNS에 형성된 거대한 팬덤이 더 위대하다고 믿었고 그렇게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직 ARMY(BTS 팬클럽)가 좋아할 음악을 만들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함께 성장하며 즐거움을 나눴다. 최근 BTS는 ‘버터(Butter)’와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무려 9주째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는 BTS를 두고 음악 시장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 혁명의 상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자본과 방송이라는 거대 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음악 소비의 생태계는 절대 불가침의 성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거대 미국 자본으로 키운 가수가 미국 방송계를 통해 성장하고 음반과 음원을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절대 생태계가 깨지리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BTS와 ARMY가 부숴버린 것이다. 자본과 방송 권력이 지배하던 음악 시장이 팬덤이라는 신권력에 의해 재편된 것이다. 프랑스의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음악 시장의 변화는 모든 소비시장의 변화를 예고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예언처럼 거의 모든 시장에 팬덤이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방송도, 광고도, 유통도 디지털 신대륙으로 이동 중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 시장도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 지상파의 절대 권력은 급격히 축소됐고 유튜브를 비롯한 스마트폰 위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인류의 표준 방송으로 자리잡았다. 방송사의 절대 권력은 파워 유튜버들에게 분산됐고 오직 실력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방송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연예인이 되거나 방송전문가가 되려면 반드시 대형 방송사에 취업하거나 인맥을 이용해야 했다면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크리에이터로 도전하고 거기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됐다.


방송의 변화는 광고 시장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제 광고기획사들의 최대 젖줄이었던 방송 광고는 줄어든 반면 SNS 기반의 광고 마케팅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TV홈쇼핑 회사들도 TV를 떼버리고 온라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미 TV 매출보다 온라인 매출, 그것도 모바일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지금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이라면 디지털 신대륙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방송, 광고, 금융, 유통,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자리가 디지털 문명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만이 희망이다

KBS가 수신료 인상 없이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나 1500명의 직원이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보직이 없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방송을 제작해도 광고가 붙질 않으니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그저 가만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2년 전 여섯 살 꼬마 유튜버 보람이가 한 달에 30억원씩 벌어 10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는 기사가 났을 때 이미 예고된 현실이다. 많은 기존 매체가 유튜버들의 자극적인 방송, 아이들을 이용한 학대 방송, 디지털 문명의 폐해에 대해 특집 방송을 내고 비난했지만 어느 누구도 KBS는 실패한 키즈방송에서 어떻게 보람이 채널은 매월 30억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람튜브는 어른들의 편견으로 결국 문을 닫았고 2700만 명의 구독자와 120억 조회수를 기록한 세계 2위의 키즈방송국은 폐쇄됐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KBS의 적자는 더욱 커졌을 뿐이다. 닫힌 세계관으로 준비하는 미래는 파멸밖에 없다. 제2의 보람튜브 사태가 방송, 광고, 금융, 유통 등 어떤 분야에서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아니 이미 여러 영역에서 기존 생태계의 저항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조선의 세계관으로 근대화 시대를 열 수 없었듯 기성세대의 낡은 세계관으로는 청년의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두 함께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해야 한다.

이제는 메타버스 함께 즐기고 돈벌이까지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한 인류, 상상의 신세계가 열렸다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이야기]
디지털 신세계는 인류 인지 영역의 확장으로 시작됐다. 세계 최고 기업인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는 모두 상상 속의 공간을 창조해 땅 위에 머물던 문명을 무너뜨린 곳이다. 우리나라의 카카오, 네이버, 쿠팡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을 이끄는 인재들은 소위 인터넷 중독자이고 대다수가 어려서 인터넷 게임과 SNS에 푹 빠졌던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등은 물론이고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도 삼성SDS를 그만두고 처음 시작한 사업이 대형 PC방이었다. 이들의 세계관은 명확하다. 디지털 대륙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포노 사피엔스들과 공유하며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며 인터넷을 통해 연대하고, 학습하고, 공유하며 미래를 창조하는 신인류. 이들이 이제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함께 즐기며 돈벌이도 하면서 신나는 문명을 창조하고 있다. 이미 디지털 신대륙의 성공을 경험한 세대들이 메타버스 세계를 희망으로 바라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어느 대륙에서 살고 있는가

나의 세계관을 점검해보자. 나는 디지털 문명이 표준 문명임을 굳게 믿고 있는가. 모든 비즈니스는 포노 사피엔스를 대상으로 디지털 플랫폼 위에 디자인돼야 함을 믿는가. 내가 가진 기존의 모든 능력을 디지털 무대 위로 옮겨 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가. 필요한 학습은 검색을 기반으로 유튜브와 구글링을 활용하고, SNS상 인맥도 적극 활용하고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새로운 성공적인 디지털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트렌드 변화와 성공의 핵심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특히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는가. 신문명으로의 대전환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고통스런 학습을 요구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디지털 신인류

최근 내가 지도하는 한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이 원전의 지진 안전성을 평가하는 딥러닝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당연하게도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은 기계공학에서 가르치는 분야가 아니다. 이 학생은 검색을 통해 학습하고 오픈소스를 활용해 독자적인 코딩을 완성했다. 코딩 과정에서는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기반의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기계공학 분야의 지식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출했다. 그걸 혼자 힘으로 개발한 것도 놀라운데 지금은 딥러닝 코드를 금융 분야와 의료 분야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슈퍼 휴먼, 슬기로운 포노 사피엔스다. 이렇게 디지털로 연대한 20대의 디지털 지식 집단이 빠르게 움직이며 다양한 분야별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신기술을 접목한다면 그 변화의 속도는 무시무시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한 이들을 이미 기업들은 억대 연봉을 안기며 스카우트하고 있다. SNS로 연봉까지 정확히 공유하는 이들이 변화를 모를 리 없다. 글로벌 시장까지 꿰고 있는 그들에게 언제까지 지금의 시스템, 지금의 교육 방식이 절대 선이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슬기로운 디지털 세계관으로의 대전환은 어렵지만 가야 하는 숙명이 됐다. 디지털 신대륙의 세계로 눈을 돌리자. 신문명의 놀라운 혁신을 맞이하고 학습하자. 거기 눈망울 총총한 디지털 청년들의 신세계가 있다. 함께 슬기로운 미래, 디지털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자.

■ 최재붕은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한 인류, 상상의 신세계가 열렸다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이야기]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인류문명사적 변화 속에서 비즈니스의 미래를 탐색하는 공학자다.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 인문학, 동물행동학, 심리학과 비즈니스의 융합 등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활약을 이어가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 4차 산업혁명 권위자다. 베스트셀러 《포노사피엔스》를 통해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2014년부터 기업, 정부기관 등을 대상으로 2000회 이상 디지털 문명 대전환에 대한 강연을 이어 오고 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포노사피엔스 코드 체인지9》 《코로나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