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지 않은 길
나이 앞자리에 ‘6’이 임박했을 때 내게는 그런 숫자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두려움으로 59세 12월 마지막 주는 크리스마스·연말 기분 대신, 독감을 앓으며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 보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보니 특별한 것도 없었다. 50대 때 하던 일을 60대 때도 그대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일반인들과 예술가의 삶은 전반은 비슷해 보이지만 후반은 상당히 달라진다.

흔히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젊은 날 바쁘게 지냈던 일을 멈추고, 여유롭게 나머지 인생을 살자는 의미다. 1부는 국가와 사회나 가족을 위해 고생했고 2부는 자신을 위해 살자는 뜻 아닐까?

일반 직장인들은 그게 가능할 테지만 예술가는 딱 구분 지어주는 정년이란 것이 없어서, 그 나이가 되어도 처음 하던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 내 주변도 정년을 마치고 여유롭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 물론 대우나 형편이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년이 없는 나는 아직도 일한다. 정년이 없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늘 의심하며 말이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한때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오래도록 좋아하며 외웠다. 지금은 어렴풋이 갈림길에서 나누어진 다른 길을 회상하며 못내 아쉬워한다는 내용만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항상 화가와 과학자였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축구도 짧게 했었기에 축구선수가 될까도 생각은 했으나 주로 후보여서 일찍 접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가지가 떨어지듯 다 사라지고 화가만 남았다. 그리고 그림 좋아하던 아이는 결국 화가가 됐다. 시의 내용처럼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과학을 좋아했으니 우주개발의 선구자가 됐을 것이고, 축구선수로 계속 뛰었다면 아마도 체형만은 분명 ‘마라도나’나 ‘메시’를 닮았을 것이다. 가무도 사실 빼놓을 수 없었으니 ‘마이클 잭슨’ 옆집에 사는 가수쯤은 됐을까?

가지 못해 아쉬웠던 길은, 책을 읽으며 축구경기를 보며 영화를 감상하며 그 주인공으로 분하여,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하는 것으로도 이젠 충분하다. 장자는 꿈속의 나비와 현실의 자신이 혼돈된다고 했지만, 연속되는 것이 자신임은 자명하다. 꿈속에서 줄곧 나비로만 나왔다면 몰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므로, 장자는 꿈속의 나비가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현실의 장자가 맞다는 말이다.

이제 꿈은 잠시 위로는 될지언정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 한 번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인생은 연습 없는 실전이니 더욱 애착을 가지고 정진할 일만 남았다.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혹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이수동’처럼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끔, 이 길을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이한여름 밤에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