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이례적인 힘겨루기 속에 여러 불협화음을 노출했지만 꽤나 충격적인 결과다. 양측 입장 차이가 워낙 크긴 했다. 일본은 징용공 및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국 내 자국기업의 자산 강제집행을 묵과할 수 없다며 수용할 수 있는 해법 제시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제안이다.

정상회담이 열려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번 도쿄올림픽은 망가진 양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올림픽이 끝나면 두 나라 모두 선거일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선 일본의 반도체 핵심규제 철회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징용·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사법부 판결이 곤혹스럽다’며 일본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미 수차례 내놨다. 그 연장선에서 나름의 추가 해법을 제시해 관계 정상화의 초석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양국 정상회담 무산과 별개로 돌아볼 것은 어느새 대일 저자세 외교라는 이상기류가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어떤 것이 품격있는 외교인지를 고민하며 이번 사안에 임해왔다”고 강조했지만 민망할 정도로 정상회담에 매달린 정황이 뚜렷하다. 이번만도 아니다. 8·15 기념식이나 한 달 전 G7 회의 초청 때도 줄곧 한국은 회담을 요구하고 일본은 거부하는 낯선 장면이 반복됐다. 저자세 배경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대북 또는 대미 관련 문제일 것이라고 추정해볼 뿐이다. 하지만 외통수 상황을 맞게 된 이유만큼은 분명하다. 외교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다보니 누적된 왜곡이 감당 못 할 후폭풍으로 닥친 것이다.

지난 4년여의 반일 선동 외교의 결과는 초라하다. 징용·위안부 문제에서 반일 감정을 ‘배설’한 것 외에는 진전된 것이 하나도 없다. 한·일 관계는 파탄났고 두 문제의 주도권도 일본에 넘겨주고 말았다.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신뢰도 추락 중이다. 오죽하면 동맹인 미국이 일본 편을 들고 있다.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가 이 상황을 책임있게 설명하고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