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디지털 통상규범 선도할 준비됐나
지난 9~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각국은 ‘디지털세(稅)’ 합의안을 지지하기로 했다. 그동안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서버가 있는 본국에서만 세금을 냈는데, 앱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누려왔다. 디지털산업의 특징 중 하나인 수익을 내는 국가와 세금을 내는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점에서, 앞으로 디지털세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조율될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세를 시작으로 디지털 통상 시대가 공식 개막됐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강국으로 꼽히지만, 싱가포르와 호주 사이처럼 우리나라가 체결한 디지털 협정보다 더 포괄적이고 기술적으로 앞선 디지털 통상 협정들이 맺어지고 있다. 디지털세를 비롯해 △국경 간 데이터 이전 및 서버 현지화 이슈 △넷플릭스 등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콘텐츠 즉, 국경을 넘나드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서비스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의 암호화를 비롯한 차단과 검열 이슈 △전자적 전송에 대한 무관세 모라토리엄 등 굵직한 이슈가 산적해 있다.

디지털 무역과 투자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만들자는 논의는 이제 발걸음을 뗐는데, 디지털 경제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 국내 가맹점만 8만여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서비스가 있지만 세계 시장점유율은 높은 편이 아니다. 디지털·모바일 결제서비스는 성업 중인데 관련 규범이 없기 때문에, 기존 서비스는 자신의 기술을 표준으로 만들고자 전력 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통상규범은 속성상 최신 기술,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을 토대로 정립될 것이다. 따라서 외국의 디지털 결제서비스는 국내에서 널리 통용되는데 반해 우리나라 디지털 결제시스템의 해외시장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은 디지털산업 경쟁력과 통상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보인다.

디지털 통상은 개념이 모호하고, 초국적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 끊임없는 기술진보는 항상 새로운 기술적 이슈를 만들기 때문에 통상 전문가가 아니면 그 중요성을 알기 힘들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을 불허했을 때, 우리나라는 기업·국민·정부가 한마음으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드라이브를 지지했다. 그러나 디지털 통상 분야는 나라 안의 역량을 결집하기도 쉽지 않다. 통상규범을 마련하는 과정도 우리나라만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기 힘들다는 애로점이 있다. 현재 디지털 통상규범 제정에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가 미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몇개국이 되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드라마 등 디지털화된 콘텐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디지털 통상규범의 조속한 제정으로 글로벌 경영 환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통상규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수준 설정이나 데이터 보안을 위한 국가 정책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중국은 데이터 보안을 위한 국가의 검열 및 암호화의 수준은 매우 높지만, 개인정보 보호 수준은 낮은 편이다.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낮으므로 빅데이터가 넘쳐나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개인정보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나라마다 제도적 환경이 다르므로, 디지털 통상규범 제정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클수록 우리의 요구 사항은 정당성을 얻게 되고, 궁극적으로 규범 제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통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앞둔 이때, 디지털 통상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