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일 않고 돈 받는 노조원 또 늘리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가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안해 앞으로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만 재심의할 수 있도록 의결했습니다.”

2013년 6월 14일 타임오프 한도를 재심의·의결하면서 당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이 한 발언이다. 그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 발생해 반드시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변경을 해야 될 테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됩니다”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이 약속이 8년 만에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노사가 타임오프 한도 변경을 놓고 샅바싸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타임오프는 노조전임자가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일하지 않아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간이다. 타임오프 한도는 노조가 유급 전임자를 몇 명이나 둘 수 있는지에 관한 기준이기도 하다. 국내 대표적 사업장 중 한 곳인 현대자동차의 노조전임자는 120명이 넘고, 이 중 20명가량이 타임오프를 적용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지난 6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발족식과 1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부터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부칙에 법 시행 즉시 심의에 착수하도록 명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초 정부안에 없던 부칙 내용이 입법과정에서 들어간 데는 노동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앞으로 본격화될 경사노위 심의위원회에서는 그동안 타임오프 한도를 변경해야 할 정도의 ‘특별한 상황’이 벌어졌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행 타임오프는 조합원 수에 따라 10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별로 연간 2000~3만6000시간의 근로시간 면제가 가능하다. 노동계는 첫날 회의에서 “(전임자 수 제한으로) 상급단체의 역할과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중소 규모 사업장의 노조 활동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상급단체 파견자에 대한 별도 타임오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줄었고, 코로나발 실업자 증가와 글로벌 경쟁 심화 등의 상황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긴박한 경제 상황을 놓고 보면 타임오프 한도를 오히려 축소해야 할 요인이 많다는 목소리가 크다.

노조 전임자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국제적인 관례다. 우리나라처럼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이 보편화·관행화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노조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급여를 주는 일이 없다. 노조와 상관없이 사업장 내 근로자대표의 활동(단체교섭 등)에 대해 근로시간 면제 등 일정 혜택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노조는 ‘한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임자 급여지급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이 마련된 건 1997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다. 노동계 요구사항인 복수노조 허용을 받아들이는 대신 유급전임자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기 위해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 노조법에 함께 반영됐다.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는 이후에도 노동계 반발로 13년간 도입이 유예되다가 2010년 7월에야 타임오프제와 함께 시행됐다.

노동계는 ILO핵심협약 관련 노동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친노동적 정책이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과 대선정국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해 타임오프 한도를 늘리려고 시도할 전망이다. 문제는 개정 노조법에 따라 정부(고용노동부)를 대신해 타임오프 조정권한을 갖게 된 경사노위가 그동안 친노동성향으로 논란을 키워왔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출신을 위원장으로 둔 경사노위는 경영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ILO핵심협약 비준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경사노위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답정너’ 식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