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석의 메디토크] 방문 진료와 재활 활성화 논의할 때다
1970년대까지는 왕진 가방을 든 동네 의사와 간호사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청진기, 혈압계, 체온계, 간단한 소독 및 주사 기구 등이 들어 있는 왕진 가방은 의사의 필수품이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본과에 올라가면 청진기 등의 기구와 왕진용 가방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인 시절이었다. 당시 왕진의 주인공은 병원 밖에서도 가운을 입은 의사와 캡을 쓴 간호사였다. 임종을 앞둔 부모님에게 왕진 의사를 불러 진찰을 요청하고 링거 주사라도 맞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 중 하나였다.

의료보험이 확대되고, 진료 수가는 낮아졌으며, 질병 양상도 다양해져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젠 의사가 진료 목적으로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일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봉사 개념의 방문 진료와 응급 상황을 제외하면 의료 행위가 이뤄지는 현장은 의료기관으로 한정됐다.

그런데 최근 이전의 왕진 같은 진료 형태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원 중심의 ‘일차의료 방문 수가 시범사업’이다. 그야말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일차진료를 위한 왕진이다. 인공호흡기, 영양 공급을 위한 튜브, 배변·배뇨 장애 등 복잡한 전문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 소아환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병원 중심의 ‘중증소아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도 있다. 이미 시범 수가도 마련돼 있지만 중증소아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은 서울대병원과 칠곡 경북대병원 두 곳만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직종의 전문 인력이 참여해야 하지만, 시범 수가로는 운영이 어려워 두 기관 모두 공공의료 서비스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 인건비조차 확보하기 힘들어 사립 의료기관이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의료기관 방문이 더욱 어려워졌다. 선진국에서조차 취약계층 사망률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고, 의료서비스 소외로 인한 건강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이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재택의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중증 장애인을 위한 여러 사업과 논의는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보건소 중심의 ‘지역사회 중심 재활사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나 의료가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의료기관 수도 부족해서 사업 내용을 보면 의료 인력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보건소가 중심이 된 후진국형 모델이었다. 일부 사회복지 전문가나 관료, 정치인은 아직도 이 사업을 개념적으로 선호하고 예산도 계속 배정하지만, 이미 소득 수준이 높고 재활의료 전문 인력이 충분히 배출돼 있으며 교통도 발달한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옷이 됐다.

한국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같이 거주하기보다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지내는 시설화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은 국민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부모, 가족과 대면 면회도 못 하는 생이별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대안으로 집에서 지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방문의료, 재택의료 재활 활성화를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

재택 환자를 위한 재활 의료도 한두 가지 치료를 단순히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마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질환에 마치 오케스트라가 마에스트로 지휘에 따라 교향곡을 연주하듯, 환자 맞춤형 치료를 지휘자인 재활의학과 의사 중심의 팀 접근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의료도 제공하고, 재활 치료도 하고 시회복지사의 복지 서비스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정보기술을 적용한 플랫폼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하는 의료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은 이런 재활의료 서비스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