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농업과 ESG
차창 밖에는 어느새 신록이 우거진다. 벌써 소만(小滿) 언저리다. 계절이 시나브로 변함에 따라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그 밀도를 달리하는 게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제 농촌에서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계절에 따라 농작물이 익어가고 나아가 수확하게 되면 비로소 식탁에 올라와 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정신의 안정을 북돋운다. 이처럼 농업은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해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농업을 인간 생활의 기반으로 높이 평가했다. 먹거리 공급 기능은 농업이 가진 힘 중 일부다. 논과 밭이 중심인 농업·농촌이 주는 공익적 가치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금융지주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강조한 ESG는 시대적 가치다. 이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로 이와 같은 용어가 나타난 배경은 바로 지구 환경 상태다. 오늘날 지구는 사람의 건강 상태로 비유하면 여러 질병 때문에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다. 환경 파괴적인 산업의 성장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은 머지않은 미래에 삶의 터전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이상기후로 인한 산불, 생태계 파괴 등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에 세계 각국은 지구 환경 회복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ESG의 핵심은 바로 지속가능한 경제,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이는 농업의 본질적 기능과 무척 닮아 있다.

농업은 생산 기반인 논밭이 지니고 있는 홍수 방지 기능, 푸른 농작물과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 활동 등과 더불어 이를 통한 환경보전, 경관유지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환경인 ‘E’와 맞닿아 있다. 또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역할과 함께 농촌사회 유지 기능은 안정적인 국가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는 사회를 뜻하는 ‘S’와 부합한다. 지배구조인 ‘G’는 기업 부문에서 통용될 수 있는 용어지만, 이를 기업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생각해 보자. 급격한 산업화로 과거와는 달리 농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긴 했으나, 지배구조 최상단에 놓여 있는 국민은 다수가 여전히 농심(農心)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농업은 태생부터 ESG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더는 농업이 낡고 뒤처진 산업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농업을 바라보자. 그리고 시대적 가치인 ESG를 주목하자. 결국, ESG 실천의 지름길은 농업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