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글로벌 春窮期(춘궁기) 벗어나려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를 비롯해 중동의 시리아, 예멘까지 확대된 ‘재스민 혁명’은 ‘아랍의 봄’이라 불리며 해당 지역을 민주화 열기로 뜨겁게 했다. 혁명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하게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당시 곡물 등 식료품 가격의 국제적인 폭등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국제지수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은 2010년에 전년 대비 16% 상승하고 2011년도에는 24%까지 급등한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해당 국가들은 국내 곡물 가격을 통제하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사재기 현상 등으로 식료품 부족을 유발했다.

당시 사태는 국제 곡물 시장의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에서 발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파격적인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뤄졌는데, 이렇게 공급된 유동성이 곡물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 확대로 이어지며 가격을 높인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를 비롯한 주요 식료품 수출국의 작황 악화에 따른 공급 감소 역시 가격 폭등에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상황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적으로 다시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FAO 국제가격지수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0% 폭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취해졌던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비슷한 정책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뤄졌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급 측면에서 코로나19 이후 식료품 생산 및 공급의 국제적인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도 않고 있다. 특히 농업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인데, 코로나19가 여기에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와 같이 노동집약적인 농업이 이뤄지는 국가에서 관련 노동력을 제공하던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이 어려워지면 생산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최근 우리나라 식료품 가격 상승세는 우려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전반적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월 1.1%, 3월 1.5%, 4월 2.3%인 데 비해 식료품 항목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그 몇 배인 2월 10.2%, 3월 8.8%, 4월 8.6%에 이르고 있다. 4월에는 과일 17.8%, 채소 17.7% 등 폭등세가 심각하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에도 국민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 상승은 심각한 상황이란 뜻이다.

식료품 가격 급등은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소비와 생존의 안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극심한 생활고로 이어질 수 있다. 마치 과거에 농업 생산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가을에 걷은 식량은 바닥나고 새로운 수확까지 기다려야 해서 굶주림에 시달렸던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를 연상하게 한다. 물론 최근의 식료품 가격 상승은 국제적인 현상으로 일종의 ‘글로벌 춘궁기’가 되고 있다.

다만 미국 중심의 선진국은 코로나19 사태 진정과 함께, 특히 백신 보급에 따른 면역 확보로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식료품 가격이 다소 상승하더라도 소득 개선에 따른 실질 구매력은 회복될 수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식료품의 국제 생산 체계가 정상화되면 공급 부족도 완화될 수 있는 데다 경기회복으로 일부 유동성의 회수까지 예측되면 상황은 더욱 개선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식료품 가격 상승 자체도 문제지만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소득 부진으로 국민의 체감물가가 높다. 현재까지의 감염확산 통제는 개인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식료품 가격 급등에서 벗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국내에서도 유동성을 회수할 수 있도록 내수 경기가 회복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면 소비 회복이 필수적이다. 실질적인 농산물 생산 체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노동력 이동 확보 역시 중요한데 이 또한 감염 확산 통제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와 같이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는 글로벌 춘궁기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은 백신 확보와 이를 통한 면역 확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