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바이러스 행성'에서 살려면 …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은 가장 낙관적 예상을 뛰어넘었다. 효과가 큰 백신들이 여럿 개발된 것도 든든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백신이 나온 것은 특히 반갑다. 백신의 생산과 배포도 기대보다 빠르다.

우리는 성적이 좀 처진다. 접종 성적에서 100등을 넘어섰다는 소식에 한순간 향수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6·25전쟁 바로 뒤 산천도 사람도 헐벗었던 우리나라의 성적이 그 언저리였다.

초기에 중국과의 항공편을 중지하라는 의사들의 간곡한 호소를 무시할 때부터 불길했다. 중국과의 항공편을 엄격히 규제해 재앙을 피한 뒤 활기를 되찾은 대만의 모습은 현 정권의 실책에 대한 준열한 평가다.

대통령이 백신 대신 치료제를 들먹일 때 조짐은 더욱 불길해졌다. 역병은 초기에 막아야 한다. 변이가 빠른 바이러스 역병은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예방과 치료는 차이가 너무 크다. 이런 상식을 외면한 데서 현 정권의 시각과 계산을 읽을 수 있다. 일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현 정권의 태도가 이 큰 재앙을 부른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역병의 수준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엔 무지에서 비롯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지식은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신문에서 바이러스의 정체와 지구 생태계에서의 위치를 소개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없다. 큰 재앙을 맞았는데, 정작 그 재앙의 근원에 대한 지식은 정부도 시민들도 외면한다.

1986년 미국 대학원생 리타 프록터가 바닷물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가 알아보았다. 바닷물엔 바이러스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때였다. 그가 발견한 바이러스는 1L에 1000억 마리였다. 모두 경악했지만, 추가 조사마다 그의 발견을 확인했다. 바다에만 수염고래 7500만 마리 무게의 바이러스가 사는 셈이다.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워낙 커서, 날마다 해양 박테리아의 15~30%를 죽인다. 이 엄청난 파괴력은 박테리아 증가를 억제해 지구 생태계의 안정성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박테리아의 진화를 촉진시켜 박테리아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특히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창궐을 억제한다.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들은 이질이나 콜레라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놀랍게도, 지구 광합성의 10%는 바이러스 유전자에 의해 수행된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그저 해로운 존재로 여길 수는 없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로 여겨지지 않지만, 지구를 뒤덮었다. 이런 사정을 가리키면서 과학 저술가 칼 지머는 자신의 저서에 ‘바이러스 행성’이란 이름을 붙였다. 적절한 표현이다.

바이러스 가운데 덜 사나운 종들은 동물의 세포 속에 들어와서 염색체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세포 분열에 따라 자연스럽게 개체를 늘린다. 그러다가 화학 물질이나 방사능과 같은 신호를 받으면, 염색체에서 나와 증식해 세포를 죽인다. 변이가 일어나 염색체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때도 있는데, 그 경우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인 동물의 유전자가 된다. 사람 DNA의 8~10%가량이 그렇게 동물 세포 속에 머물게 된 바이러스의 DNA다.

실은 우리는 바이러스에게 큰 빚을 졌다. 1억 년 전 즈음에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 조상은 바이러스가 생산하는 단백질을 이용해 태반을 만들었다. 바이러스가 없었으면 포유류가 진화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바이러스는 화석을 남기지 않으므로, 바이러스의 유래를 알기는 어렵다. 그래도 생명체들의 유전자에 남긴 흔적을 보면, 몇십억 년 전부터 존재한 것이 확실하다. 자연히 바이러스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번 역병은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러스 행성’에서 살려면,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일에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관심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