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의 '사회환원'
소아암·희귀질환 환자에 희망 비추고
어린이가 존중받는 문화 마중물 될 것

김한석 < 서울대어린이병원장 >
[전문가 포럼] 어린이 의료 패러다임 바꿀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난달 28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은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한 3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국내 어린이 의료계를 대표해 사업 추진의 책임을 맡게 됐다.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을 위한 유족의 기부금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국내 소아암·희귀질환 치료 및 검사를 지원하는 체계와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분야별로는 △소아암 환아 진단·치료 지원 1500억원 △희귀질환 진단·치료 지원 600억원 △소아암·희귀질환 연구·인프라 구축 지원 900억원 등이다.

어린이 의료사에서 이런 미증유(未曾有)의 기부는 이 회장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유족과 서울대어린이병원 간 깊은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가장 시급한 지원은 무엇인지, 이에 관한 어린이 의료계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한 끝에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 사업의 의미를 짚어보며 기부자의 뜻을 기리고, 성공적인 실행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자 한다. 첫째, 소아암·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희망이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보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가 약제나 신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액 검사에 제약이 많다. 이 사업을 통해 소아암·희귀질환을 앓는 어린이 환자에게 보다 많은 치료 대안을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유전자 검사를 통한 맞춤 치료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진단·치료 기술을 국내에서도 시행할 수 있도록 환자 지원과 어린이병원들의 기반 조성 모두에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 어린이 의료 분야의 도약을 기대한다.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을 통해 어린이 의료기관 간 ‘연구 기반 치료’를 위한 다기관 네트워크가 구성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 어린이 의료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연간 40만 명이 찾는 대표적인 어린이병원임에도 매년 15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지방 어린이병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 의료진 확보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미래를 위한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할 여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사업을 통해 서울대어린이병원을 비롯한 10개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를 중심으로 45개 상급종합병원이 힘을 합해 소아암·희귀질환 분야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들을 공동으로 연구할 것이다. 연구 결과물은 참여한 모든 의료기관이 공유해 진단·치료에 적용함으로써 전국 어린이 환자들이 이 사업의 혜택을 받는 동시에 대한민국 어린이 의료 역량 강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셋째,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리고 어린이가 존중받는 사회 문화 확산이 기대된다. 한 해 출생아 수가 30만 명을 밑도는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출산을 장려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피고, 질병을 가진 어린이도 최상의 치료로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번 이 회장 유족의 기부는 미래 세대 보전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선행으로 그치지 않고 심각한 저출산과 상대적 저수가제도로 인해 붕괴 위기에 있는 우리나라 어린이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끌어올리고, 어린이가 존중받는 사회 문화를 확산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이제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정진하고자 한다. 곧바로 사업단을 정비하고, 전국적인 참여 위원 인선을 마치는 대로 오는 10월 사업단 첫 연구과제와 참여 병원 공모를 시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관련 여러 의료기관 및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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