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코스피3000 시대를 동학개미가 열었다고?
2020년 3월의 주가는 누가 봐도 비정상이었다. 코로나19가 두렵기는 했지만, 멀쩡하던 기업 가치가 하루 아침에 반토막이 났다는 건 기회가 왔다는 걸 뜻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주식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크게 떨어진 주가가 결국엔 내재가치만큼 회복될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했고, 떨어지는 칼날은 쥐는 게 아니라는 비관론자들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을만큼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의 개미들은 그렇게 평생에 한번 열릴까 말까 한 ‘아비트리지’를 맛보았다.

의식을 했던 안했던 당시 개미들이 믿은 건 ‘효율적 시장’이었다. 패닉 등으로 실제 가치를 벗어난 가격이 결국에는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우리는 시장의 효율성이라고 부른다. ‘미스터 마켓’은 가끔 비효율적이이서 투자 기회를 제공하지만, 급락한 주식을 사놓고 잠을 잘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을 ‘개미들이 승리한 한 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효율적 시장에서 비효율을 찾아냈고 그 비효율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데 과감히 베팅했기 때문이다.

이 스토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과 기관이 빠져나간 증시를 ‘동학개미’들이 사수해 코스피 3000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코스피가 드디어 박스피를 탈출한 것은 동학개미들 덕분이라며 증시 회복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동학개미들이 우리 증시를 지켰다”고 추켜세운 마당이니, 자신들이 진짜 외세(외국인)와 봉건 세력(기관)으로부터 시장을 해방시키기라도 한 것 처럼 착각하는 듯 하다.

문제는 개인투자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이들의 지분 주장이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포트폴리오 비중 유지를 위한 국민연금의 주식 매도를 ‘매국’으로 몰아세워 결국 투자 원칙을 바꾸게 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을 인도네시아와 함께 1년 넘게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증시가 세력간 다툼의 장이고 가격 움직임의 뒤에는 어떤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혹세무민’한다. 대부분의 개미들은 믿지 않지만, 무지한 정치인들은 표심에 영향이라도 미칠까 노심초사한다.

지난해 코스피가 크게 오른 건 동학개미들이 안오를 주가를 억지로 밀어올려서가 아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발빠른 부양책으로 돈이 위험자산인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미래 지향적으로 변해가던 우리 기업들의 체질이 코로나 영향으로 부각된 덕분이고, 기업 지배구조가 주주 친화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한 개미들은 이런 시장의 흐름을 감지하고 일찌감치 증시 회복에 베팅했다. 대부분은 코스피 3000 시대의 공이 자신들에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은 하지 않는다.

장장 14개월 만의 공매도 재개에 시장이 시끄럽다. 공매도의 가장 대표적인 순기능은 시장의 효율성 증대다. 주가가 내재가치에 비해 오버슈팅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이다. 일부 개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가를 끌어내려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오른 주가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베팅한다. 기업의 내재 가치 밑으로 주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세력이란 없다.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우상향 하는 주가에 반대로 베팅하는 건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다. 그만큼의 분석과 훈련이 필요하다.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장의 효율성은 2020년 개미들을 승리로 이끈 바로 그 효율성이다. 이를 믿지 않는 개미들은 주식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게 좋다. 여기저기 시위 다니고 청와대 청원문 작성할 시간에 기업 분석을 하나라도 더 하는게 제대로 된 투자자다. 스스로 기업을 분석할 능력이 안된다면 좋은 펀드매니저를 찾아 맡길 것을 권유한다. 헤지를 위해 숏포지션을 일정 부분 가져가고 싶다면 국내에 훌륭한 헤지펀드 운용사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주식 투자 붐을 등에 업고 또 하나의 권력을 만들어 자리를 차지하려는 의도 말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정상적인 개인투자자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