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추진 중인 가운데 미국 정부가 백신 협의는 ‘반중(反中) 전선’ 성격의 쿼드(4개국 안보협의체) 참여국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한국과의 백신 협력을 묻는 질문에 “미국 내 공급이 우선”이라며 “비공개 외교 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쿼드와 백신 수급 협의를 지속해왔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국경을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한 데 이어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 참여국도 지원할 뜻을 밝힌 반면 쿼드 참여를 망설여 온 한국에 대해선 유보적 입장을 취한 것이다. 화이자가 최근 일본에 5000만 명분 백신을 공급하기로 한 배경에 미국 정부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쿼드 참여국들과 백신 10억 회분 배분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보 협력 없이는 백신도 없다”는 점을 미국이 분명히 한 셈이다.

백신 확보에 비상이 걸린 우리 정부로서는 여간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신 스와프가 여의치 않으면 반도체와 배터리의 대미(對美) 투자를 늘리는 대신 백신 지원을 이끌어내려던 참에 미국이 ‘쿼드 우선’ 카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이 안보와 경제는 물론 백신까지 모두 한 묶음으로 보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웠지만 얻은 게 없다. 북한 위협은 커졌고, 중국의 사드 보복과 코로나 유입으로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 와중에 한·미 동맹은 흔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보, 경제, 방역 모두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고조되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려면 흐트러진 한·미 관계부터 복원해야 한다. 안보와 경제는 물론 방역도 살리는 길이다.

한때 ‘방역 모범국’에서 ‘백신 후진국’으로 전락한 데 대해 국민이 느끼는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교·안보전략 전반은 물론 방역과 백신 정책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아울러 정부가 자꾸 말을 바꾸고 얼버무릴 게 아니라 백신 공급계획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의문이 꼬리를 무는 국내 백신 접종 현황에 대해서도 명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특정 백신을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만 맞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기밀’ 운운하며 숨기는 것은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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