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대립이 새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연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데 이어 중국에서 한 해 진로를 확정하는 양회(兩會)가 열려, 진용을 정비한 두 강대국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양국이 거친 표현은 자제했다지만 날 선 신경전을 마다하지 않은 모습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선 그제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막을 연 데 이어 어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7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리커창 총리는 전인대 개막 업무보고에서부터 “외부세력이 홍콩과 마카오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막고 억제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6% 이상’이라고 소극적으로 제시하면서도 국방예산은 6.8% 증가한 1조3553억위안(약 235조원)을 계상했다. 코로나 속에서도 군비확장 노선을 이어간 것이다.

이런 중국을 향해 미국이 발산하는 ‘신호’도 심상치 않다. 양회 개막 직전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안보전략 지침’에선 중국을 “개방된 국제질서에 지속해서 도전을 가할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했다. “전 세계의 권력 분포 양상이 바뀌면서 새 위협이 생겨나고 있다”는 표현에선 중국의 도전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2019년까지 14년 연속 글로벌 자유가 후퇴했고, 지난해 주요국 법치지수가 2019년 수준을 밑돈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인식을 노골화한 셈이다.

미국의 대(對)아시아 행보 메시지도 뚜렷하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달 중순께 일본을 방문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향후 6년간 273억달러(약 31조원)를 들여 일본 오키나와에서 필리핀까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미사일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가치동맹’과 ‘D10(민주주의 10개국)’ 같은 수사에 머물지 않고 쿼드(미국·호주·인도·일본 안보협의체)와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준비하고 나선 것이다.

글로벌 외교·안보 지형이 큰 변화를 맞은 시점에 한국도 외교 진용을 새로 갖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예전과는 다른 대일관을 피력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 변화에 걸맞은 외교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허망한 인식을 고집하기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상황이 간단치 않다. 냉혹한 국제정치판에서 오판은 크나큰 대가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