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러면 된 거다
얼마나 잘 살아야 잘 산 것이 될까? 얼마나 잘 해야 잘 한 것이 될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잘 산 것 같지도 않고 잘 해온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아등바등 산 것은 확실하다.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질문에 게으름이 있었기에 자신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거친 파도가 넘실될 때는 파도를 잘 타지 못해 물에 빠지기도 했고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피할 길을 찾느라 헤매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갔다.

뭘 하려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젊었을 때는 대답이 명확했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들고 나니 그것에 대한 대답이 희미하다. 치열함 뒤에 오는 결과에 대한 가치와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큰 업적을 남기거나 남들이 알아주는 큰 대접을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들에 비해 나의 인생이 결코 치열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봉사를 하다 보면 그냥 지하철역에 아무 하는 일 없이 종일 앉아 있는 노숙자들 역시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무실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나나, 생존을 위한 치열함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노숙자들이 힘든 인생을 비관하고 만약 삶을 포기했다면 오늘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지 못한다. 노숙자라는 어려운 삶 가운데에서도 하루를 더 생존하기 위해 차가운 지하철역 바닥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생존의 치열함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열매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된 거다.”

원하는 만큼 꼭 가져야만 승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과나 열매는 어차피 다 두고 갈 것이 아닌가. 내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게 아닌데”라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된 거다.”

달리기 선수가 더 빨리 달리려고 애를 쓰면 된 거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 선수도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자신의 실력과 저력으로는 그게 전부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정도와 나의 진짜 최선의 한계가 서로 다른 높이에 있을 때가 있다. 돌아보면 내 인생도 지금보다 더 잘 될 기회가 있었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기회를 잡을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까지 터덜터덜 힘겹게 나를 끌고 왔다. “그러면 된 것이다.”

봄이 온다. 겨울 동안 이렇다 할 내세울 만한 것을 한 게 없는가? 그래도 눈보라를 맞으며 빙판의 영하 날씨에 미끄러지기도 하며 출퇴근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