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살고 나니, 남는 것은
봄이 오고 있다. 다행이다. 아직도 아침과 저녁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지만 그래도 낮에는 창밖으로 따스한 햇살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에, 강추위에 유난히 힘든 겨울이었다. 창밖으로 봄이 오는 따스한 햇빛을 보고 있다가 문득 봄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면서 설레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 주위에서 60이 넘은 어르신들을 보면 이분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실까 궁금했다. 그때 당시 젊은 내가 보기에는 이 어르신들은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보이고 수동적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사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돼 보니 마음은 말 그대로 청춘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있고, 성취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있다. 달라진 것은 체력이 예전만 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 내가 늙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젊을 때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늙어도 여전히 길 가다가 예쁜 꽃을 보면 예쁘다고 느끼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멋있는 옷을 보면 입어도 보고 싶고 좋은 제품을 보면 갖고도 싶다. 분위기 좋은 맛집에 가고도 싶고, 좋은 음악을 듣고자 이리저리 검색도 한다. 이렇게 젊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나는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내가 살아간다고 해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살아 보니, 사랑만이 남는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척 어려운 이야기다. 세상 풍파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사람은 원망을 남기고 떠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한없는 후회를 남기며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떠날 때 원망과 후회 대신 감사함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랑 같이 살아준 가족들에 대한 감사, 나랑 같이 일해준 동료들에 대한 감사, 나의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 나를 크게나 작게나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 나의 허물을 알고도 참고 품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 이런 감사들을 모아 이 세상을 떠날 때 나의 마지막 말이 “살아 보니, 참 감사했다. 다 사랑이다”라는 말이 되면 좋겠다.

봄이 되어 또 새날이 나에게 오고 있다. 나는 새로 피는 꽃을 보면서 감사할 것이고, 내가 다니는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시는 알지 못하는 미화원분들에게 감사할 것이며, 사고 없이 내 옆을 안전하게 지나가는 그 많은 운전자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사들이 쌓여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의 마지막 말은 “살아 보니 남는 것은 감사며 이것은 사랑이었다”라는 말이 되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