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새해 소망에 대한 단상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해 결심이나 소망 하나쯤은 생각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심이나 주고받는 덕담이 몇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승진, 취직, 대학 진학, 건강, 다이어트, 금연 등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추려는 희망 일색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 중심이 있고 주변이 있게 마련이다. 중심부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이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주류라고 부르고, 중심에서 멀리 있는 사람이나 사조를 주변부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유독 주류에 대한 편입 의지가 강하고 주변부에 대한 무관심이나 존재부정이 심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거나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속담은 모두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주류에 속해야 안전하고 사회·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물론 중심에 속할 때 누리는 열매는 달콤하다. 그러나 커다란 성공이나 세상을 바꿀 만한 혁신은 늘 주변부 또는 경계에서 나왔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인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던 헤라클레스의 기둥 밖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경계에 서서 중심으로 편입될 수 없었던 그들에게 유일한 선택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악마의 입’ 보자도르곶을 넘어 넓은 바닷길을 개척함으로써 새 세상을 열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해상무역으로 자본을 축적한 유럽의 상인, 수공업자, 자영농민은 교회와 장원으로 대표되는 중세 귀족 신분을 획득하거나 흉내 내어 구질서에 편입하는 대신 ‘재산과 교양’을 중심으로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했다.

주류에 속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자기 상실을 수반한다. 주류가 요구하는 하나의 기준과 색깔,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개성과 고유함이 퇴색되기 때문이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획일성이 강화된다. 획일화의 진짜 문제는 개인의 불행이나 상실감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의 경쟁력과 생존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DNA의 다양성이 낮은 종(種)이 환경에 취약하다는 자연법칙처럼 주류 중심의 조직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공직사회나 기업에서 사람을 바꿔도 개혁과 혁신이 실패하고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다.

2021년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다. 선진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나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선진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에 결정된다.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기존의 판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어야 중진국 함정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힘은 모방과 속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에 대한 질문과 독창성에서 나온다. 주류에 비집고 들어가려는 노력만큼 경계 너머로 시선을 돌리려는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