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국, 다시 CPTPP 고민에 빠지다
이번달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공식 타결되면서 세상의 관심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쏠리고 있다. RCEP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국가와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한 아시아지역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대폭적인 관세 폐지와 투자 자유화를 표방한 CPTPP와 달리 RCEP의 자유화 정도는 높지 않지만 중국이 참여한 거대 무역협정이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CPTPP는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하면서 일본,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칠레, 베트남 등 나머지 11개국이 결성한 무역협정이다. 미국은 “21세기 통상규범을 중국이 쓰게 할 수 없다”는 전략적 구상으로 TPP를 추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TPP가 타결됐지만,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는 집권 첫날 TPP에서 탈퇴했다.

규범 중심 다자주의를 거부하고 미국의 힘에 의존하는 일방주의로 일관했던 트럼프의 시대가 지나고 스스로 다자주의자를 표방하는 조 바이든의 시대가 열리면서 새삼 TPP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이든은 미국을 다시 TPP로 복귀시킬 것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통상의 미래, 그리고 동아시아 전략 구도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TPP로의 복귀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분열된 국내 정치적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오바마가 TPP를 추진했지만, 그의 당인 민주당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당인 공화당의 협조를 받아서 가까스로 TPP 협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미국 정치 지형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인종, 계층 간 단층선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됐다. 선거의 명암을 가른 중서부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에게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확대하는 새로운 무역협정은 피로감만 안겨줄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바이든 신임 행정부의 TPP로의 복귀 길은 좁은 길이다. 우선순위에서도 밀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TPP를 활용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바이든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오바마 행정부 8년간 중국의 도전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음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있다. 보조금, 국영기업으로 연계된 중국 국가주도 경제체제 도전의 심각성을 그는 꿰뚫어보고 있다. 미국 정치의 극도의 분열상에도 불구하고, 거칠어지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초당적인 합의가 형성돼 있다.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반대당인 공화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면서 인권, 환경, 노동기준을 부각시킨 무역협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과 그의 지지 기반인 환경단체가 지지할 수 있는 무역협정 말이다.

한국은 TPP 가입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FTA 협상이 우선순위였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으니, 이제 중국과도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정치 논리, 남북 갈등 완화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상승 작용한 결과다. TPP와 중국과의 FTA 협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한국의 대중국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전략적 고민은 뒤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한·중 FTA는 타결됐지만, 서비스와 투자 분야 개방은 이뤄지지 않은 반쪽 합의였다. 설상가상, 중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FTA 협정국인 한국에 통상보복을 했다. 서비스, 투자를 다루는 2단계 협상은 답보 상태다.

그간 한국 정부는 CPTPP 가입 여부를 두고 국내적 논의를 계속해 오다가, 2018년 한·일 무역갈등이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그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바이든이 TPP 카드를 꺼내 든다면 세계 통상 지도는 격변할 것이다. 통상대국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CPTPP 가입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선택 문제로 본다면 본질을 흐리게 된다. 대한민국은 더 많은 무역과 투자 확대 기회 창출이라는 국익을 선택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RCEP와 CPTPP에 동시 가입한 일본, 호주, 싱가포르, 베트남의 선택도 그들의 국익에 충실한 것일 것이다. 한국이 예외일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