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자증세’에 초점을 맞춘 2020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정기 국회에 맞춰 정부가 내놓는 연례 세법개정안은 늘 국민적 관심사지만, 올해는 최근의 7·10 부동산 대책과 금융세제 개편안 등 파장 큰 내용이 많이 포함돼 더 주목을 끈다.

‘코로나 쇼크’를 감안해 기업 투자세액공제를 확대키로 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부자증세는 더 강화됐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세율을 대폭 올리기로 발표한 데 이어 소득세에서도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어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전격 올리겠다는 것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고, 고소득에는 그에 맞는 세율을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 정도로 나라살림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증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높은 세금이 국가가 휘두르는 ‘징벌’이어서는 곤란하다. 세제·세정의 신뢰도도 감안해야 하고, 세금을 통한 정책의 달성도도 고려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 전반에 중장기적으로 미칠 영향까지 두루 봐야 하는 게 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의 부동산 관련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판국에 정부가 종부세, 양도세를 동시에 대폭 인상하기로 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반면 세부담이 줄어드는 증권거래세 같은 쪽을 보면 다분히 인기영합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한 지 1주일이 안 돼 증권거래세 인하(0.02%포인트) 시점이 2022년으로 1년 앞당겨지고, 금융투자소득 기본공제 금액은 당초 알려진 2000만원(주식)에서 5000만원(주식+공모 주식형펀드)으로 늘어나버렸다. 수적으로 다수인 ‘개미’들 반발을 의식한 세금 포퓰리즘 때문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원칙은 지키지 못하고, 과세 행정에 대한 신뢰 훼손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식으로는 정책 목표 달성도 어려울 수 있다. 과세 강화의 주된 명분이었던 ‘주택 투기수요 억제’라는 정책부터 그렇다. 세금올리기가 단기적으로는 주택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지만, 중·장기 집값 안정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실증연구로도 확인된다.

정부가 ‘갈라치기 과세’에 치중한 결과 다수 납세자가 오른 세금 때문에 전셋값을 올리고 소비는 줄인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 결과 애꿎은 세입자들 피해만 커지고, 내수까지 위축되는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보편증세가 아닌 부자증세는 세금정책에까지 편가르기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세금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보면서 공정·공평·보편 등 세제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