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changbyeon@lh.or.kr >
[한경에세이] 도시에서 참된 마을 만들기

주택은 기본적으로 사적인 공간이지만 공동체인 마을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주택만 모인다고 마을이 만들어질까? 마을 사람들 사이의 교류, 관계 맺음이 없다면 그것은 ‘사람 사는 마을’이기보다는 ‘주택 집합소’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누구의 자녀인지, 누구의 엄마인지 서로 너무 잘 안다. 익명성을 도시의 미덕 중 하나로 생각하는 요즘 시대엔 과거의 마을이 너무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옆집 사람과 승강기에서 보낸 몇 초가 어색한 것을 보면 익명의 도시에도 과거의 마을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시의 익명성은 무관심과 두려움일 뿐이다.

어릴 적 마을에 대한 기억은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돼왔다. 20년 동안 마을 반장과 금고 총무를 한 아버지와 부족한 살림에도 찾아오는 손님을 정성껏 대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공동체의 온정이 흐르는 도시를 꿈꿔왔다. ‘어떻게 하면 계획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협동조합 주택, 공동체 주택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살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해야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택을 짓고, 살 사람들을 뽑으면 익명의 도시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 비슷한 생활 주기를 가진 사람들, 사회적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마을을 도시 곳곳에 조성하면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일하고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그들끼리 일하고 놀면서 아이디어를 주고받다 보면 새로운 산업을 잉태할 스타트업을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한데 모여 살게 하면 고독사를 해결하고 초고령화 사회 의료비 부담도 줄어들지 않을까.

마을 만들기는 도시 한복판에 농촌 부락을 조성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세련되게 세울 수 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억지로 모으기보다는 비슷한 성향과 수요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훨씬 쉽다. 육아 공동체, 창업 공동체, 고령자 공동체, 예술인 공동체 등 관계 맺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마을 공동체의 시작이다.

얼마 전, TV에서 연예인들이 아파트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하루종일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좁은 아파트를 뛰어넘어 하나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시민들이 같이 웃고 떠들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요즘 시대 마을을 복원하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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