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 <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 yhchoi@snu.ac.kr >
[한경에세이] 인터넷이 격차 줄인다

산속의 아침은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먼 산에서는 뻐꾸기, 멧비둘기, 꿩이 목청껏 울어댄다. 그런데 산속에는 뻐꾸기나 비둘기가 여러 마리 살고 있을 텐데 유독 한 놈만 울어댄다. 큰 덩치의 동물인 사자, 기린이 한 영역 내에서 가장 힘센 수컷 한 마리가 모두를 지배하듯이, 큰 새들도 가장 센 수컷 한 마리만 구애의 울음을 울 수 있다고 한다.

힘센 놈이 독식하는 일이 비단 동물의 세계에만 존재할까. 인류와 국가의 역사는 세력 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고, 이는 승리할 때 얻는 이익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같이 소외된 집단에 가해지는 불이익, 불평등이 지나치게 심한 방식은 현대에 들어서야 소수 집단의 의사가 나름대로 존중되는 등 조금씩 개선돼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권력의 집중이나 편중보다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격차다. 예를 들어 소득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자와 최고경영자 연봉의 격차를 보라. 우리나라에서도 10배가 아니라 1만 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소득과 재산의 격차, 교육 기회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이를 극복하고 반전시킬 방법이 없어지는데, 이는 사회갈등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재산과 학력을 겸비한 부모를 두지 못한 자식이 격차를 뛰어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의료 서비스나 디지털 경험에서의 격차는 곧 삶의 질의 심각한 격차로 이어지곤 한다. 태어날 때 이미 격차가 정해진다면 살아갈 의욕보다 분노가 앞설 것이다.

불평등, 부조리, 격차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이를 극복하려 하고 있을까. 힘의 논리에 순종하며 눈치껏 지내는 소극적 평화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시민운동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는 적극적 행동주의자들도 있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서는 소수집단에 동등한 접속 권리를 보장해 기회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을 얻어왔다. 수십 년 전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동시에 시작된 인터넷의 발명은 접속하는 모든 시스템에 동등한 자격을 보장해 소위 민주적인 네트워크를 정착시키고자 했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영어나 프랑스어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언어에 개방됐다. 인터넷에 유통되는 데이터에도 가치의 격차를 두지 않고 순서대로 취급했다.

인터넷의 발달은 지금껏 격차나 불평등 축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세계 곳곳의 뉴스나 정보를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인터넷의 능력, 여기에 달린 무수한 댓글이야말로 불평등에 대항하는 막강한 무기가 됐다. 인터넷이 국가나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초심을 지켜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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