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원색적인 상호 비방전으로 치닫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책임지지 않는 극단적 정치인”이라고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 성명의 당사자를 “또라이”라고 맞받아쳤다.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선 미국은 거침이 없다. 미국 기술이 활용된 반도체를 중국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게 막고 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중단시키더니, 급기야는 미국 회계기준을 지키지 않는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을 막는 법까지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초강대국 간의 마찰은 코로나바이러스만큼이나 위협적이다. 우리나라의 1, 2위 수출상대국 중국(수출비중 26.8%)과 미국(12.1%)의 무역전쟁이 재연되면 경제성장률이 많게는 1%포인트 이상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올초 1단계 합의에 이르며 한숨 돌리나 했더니, 코로나 사태를 기화로 다시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더 걱정스런 부분은 한국에 ‘누구 편이냐’ ‘입장을 밝히라’는 식의 양자택일 요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한국과 함께 세계보건기구(WHO) 역할을 지지하기 원한다”고 했다. 그제는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경제연합을 만드는 ‘경제번영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이미 작년 11월 한국 측과 논의했다는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발언도 전해졌다.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미·중 사이에서 ‘새우등 터진’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갈등을 ‘전략적 모호성’으로 넘길 수 있는 단계가 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양국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가는 양쪽이 모두 압박을 가할 위험이 크다. 사드 보복과 같은 참담한 사태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한국 외교의 원칙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그 원칙은 자유무역, 호혜평등, 국제협력, 인권, 개방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야 함은 물론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원칙 아래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만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