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항공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 대표기업 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기업·정부·국민이 합심해 디지털 경제시대의 강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때는 IT(정보기술)산업,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녹색산업을 구축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실물경제 위기가 본격화하는 지금, 문 대통령의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왔다”는 비전 제시와 “기업과 정부는 한 배를 탔다”는 기업인 격려는 시의적절하다. ‘코로나 사태’의 경제 충격파가 예상보다 깊고, 장기화하는 시점에서 위기극복의 주역인 기업인들과 함께 각오를 다진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인들 앞에서 밝힌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

그런 점에서 간담회에서 보인 대통령의 인식과 제안은 추상적이고 일방통행식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산업과 경제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당위론을 펴며 245조원의 재정 투입과 ‘3차 추경’을 강조했을 뿐, 정작 기업이 호소하는 규제완화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재정 지원은 코로나 습격으로부터 현상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며,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려면 규제 족쇄의 철폐가 필수적이다.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예로 든 자동차산업만 해도 ‘기울어진 노동법’ 탓에 미래차(車) 시대에 요구되는 생산성 확보는 엄두도 못 내는 게 현실이다. 경직된 ‘주 52시간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결국 처리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문을 닫고 말았다. 서비스산업발전법, 유통산업발전법 등 재계가 통과를 호소한 11개 법안 중 10개가 자동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규제자유특구와 규제 샌드박스를 거론하며 “전례없이 규제혁파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자찬했다. 지난해 7월 강원도가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원격의료를 허용받았지만 참여 의료기관이 전무한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다. 규제 샌드박스 역시 한시적 시범사업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어 기업들의 불만과 불안이 쌓이고 있다. 그 사이에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동남아도 저만치 앞서서 질주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빈사상태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코로나 영향이 전무했던 지난해 50대 기업 중 30곳의 매출이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1% 줄었다. 지금처럼 기업 현실과 괴리된 상황 진단으로 말만 앞세워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기는커녕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방역과 경제에서 모두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실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인들을 불러 ‘장밋빛 희망’을 강조하기에 앞서 과감한 규제철폐를 위해 ‘소원수리’부터 받아보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