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해운, 소량·쾌속 서비스에 대비해야
지난달 23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국적 원양선사 HMM(구 현대상선)의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이 있었다. 알헤시라스호는 HMM의 첫 번째 2만4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HMM은 2018년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내 조선 3사와 약 3조15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HMM은 이를 기반으로 올 3분기부터 영업이익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4월부터 정회원으로 가입한 ‘디 얼라이언스’ 회원사로서 독일의 하파크로이드, 일본의 컨테이너 통합선사인 원, 대만의 양밍 등 선사와 함께 안정적인 기반에서 영업할 수 있게 돼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항로 다변화 등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미·중 무역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적 허점이 노출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요 소비재와 연관된 부품의 자국생산 필요성이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자국생산 비중을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초 공산품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접 국가에서 조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에, 유럽은 동구권 국가들에 더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기선 해운은 이런 추세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중국의 수출물량을 전 세계로 실어나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역내무역 비중이 커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공산품도 대형 컨테이너선을 통한 대량 운송이 아니라 아마존 같은 유통업체의 유통망에 통합된 운송업체들이 소량 적기배송하는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소형 쾌속선대를 갖춰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또 이들 글로벌 유통업체의 통합 물류 플랫폼에 연동되는 디지털 기술경쟁력을 갖춘 해운사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원자재 운반선인 벌크선 운송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4대 원자재가 원유·철광석·석탄·곡물로, 이를 운송할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세계 원유 소비량의 14%를 차지하고 있고, 철광석 소비량은 65%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 향하는 원자재 운송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 벌크선사들은 주요 원자재 운송시장에서 국내 주요 화주들과의 장기운송계약 유지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또 KSS해운(LPG화물 전문운송사) 같은 소량 특화화물 운송전문업체를 적극 육성할 필요도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해운의 가장 큰 도전과 변화는 환경 규제와 기술 변화가 될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저유황유 사용에 대한 규제를 비롯해 환경규제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2050년까지 5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온실가스(CO2) 배출량 규제도 10년 이상 앞당겨져 2040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연구되거나 실현되고 있는 바이오연료, 수소, LNG(액화천연가스) 등 친환경연료로 가동되는 선박 건조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궁극적인 해법은 배터리 사용 선박이 될 것이다. 값이 싸면서도 환경친화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국가적 과제로 연구해야 한다. 에너지와 관련한 우리의 앞선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물류 연관 산업의 디지털화를 통해 스마트 물류서비스를 전 세계 화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춰야 한다.

양적 경쟁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질적으로 우수한 경쟁력을 만들어 내느냐가 한국 해운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혁신을 통해 신속히 변화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