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영의 데이터로 본 세상] 보수와 진보는 '뼛속부터' 다를까
지난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셧다운’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가운데 2912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전례 없는 선거였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미국 등 45개국이 선거를 전격 취소하거나 연기한 것과는 사뭇 달라 주목받았다.

선거를 앞두고는 많은 사회적 이슈가 정치 쟁점화된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각각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는가? 2011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가나이 료타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는 뇌 특정 부위의 크기와 두께가 다르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는 ‘뼛속’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보수 성향 사람들은 편도체 오른쪽 부분이 두껍게 관찰되는데, 이 부위는 공포 자극과 생존을 위한 행동을 담당한다. 진보 성향 사람들은 전대상회 부분이 두껍고, 이는 새로운 자극, 위험의 감수, 외부 자극에 대한 학습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와 진보 간 어떤 시각 차이가 있었을까?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의 도움으로 정치 성향에 따른 코로나19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전 국민 설문조사를 했다. 이번 조사는 4월 9일부터 닷새간 이뤄진 인터넷 설문조사로, 유효표본은 513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며 응답률은 8.92%(총 5754건 메일 발송)였다. 표본 추출은 주민등록통계(2020년 3월, 거주자) 기준으로 성별, 연령대별, 지역별로 임의 할당됐으며 대구·경북 이외 지역 거주자가 70%였다.

[차미영의 데이터로 본 세상] 보수와 진보는 '뼛속부터' 다를까
'중국인 입국금지'엔 의견 갈려

먼저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91.4%의 응답자가 ‘심각하다’ 또는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었다.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은 54.0%의 응답자가 ‘반반’이라고 했는데, 보수 성향 응답자가 15.8%포인트 더 감염 확률이 높다고 응답했다. 분노와 불안의 감성은 보수 유권자에게서 각각 8.7%포인트, 13.2%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고 진보 유권자는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수 유권자보다 9.3%포인트 더 많이 표출했다. 극복 의지란 ‘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를 의미한다.

동일한 위험에 대해 보수와 진보 성향에 따른 이해와 시각이 본질적으로 다를 때 사회 대립으로 이어진다. 한 예로, 이번 조사에서 보수 유권자의 93.5%는 ‘코로나19 국내 확산의 책임은 초기에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데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에 동의하는 진보 유권자는 23.0%에 불과했다. 보수 유권자의 87.9%는 ‘지금이라도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가 미친 경제적 여파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보수 유권자(80.7%)는 진보 유권자(61.1%)보다 19.6%포인트 많이 코로나19가 한국 경제에 미칠 심각한 영향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재난기본소득 같은 경제정책보다는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봉쇄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지지하는 정당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는 정당 입장 중시하는 경향 짙어

이번 조사에 포함된 실험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재난기본소득, 코로나 틈타 현금 뿌리자는 포퓰리즘” “‘미국도 재난 기본소득’…1인당 1000달러”라는 가상의 뉴스 헤드라인을 읽은 유권자는 보수(72.7%), 진보(74.3%)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했다. 하지만 “통합당 ‘재난기본소득, 코로나 틈타 현금 뿌리자는 포퓰리즘’” “민주당 ‘미국도 재난기본소득’…1인당 1000달러”라는 가상의 뉴스 헤드라인을 읽은 뒤에는 재난기본소득 정책에 동의하는 보수 유권자가 50.6%로 대폭 줄었다. 이런 변화는 진보 유권자 사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반대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경제적 이득을 버릴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번 설문조사가 시사하는 점은 사회적 위기 속에서 하나의 사안이 정치 쟁점화됐을 때 큰 정치적 갈등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설문에서 한 실험처럼 단지 뉴스 헤드라인에 정당의 입장을 표기하는 것만으로도 유권자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이제 코로나19도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사회적 위험 상황에서는 상대의 시각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첫걸음인 것 같다. 코로나19를 가장 평화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처한 우리 국민이 ‘포스트 코로나’ 일상에서도 결속과 겸손, 인내를 통해 세계적으로 앞선 시민으로 남으리라고 기대한다.

차미영 < 기초과학연구원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CI·KAIST 전산학부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