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脫원전, 빠른 포기가 답이다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의 상징인 두산중공업이 국책은행으로부터 긴급자금 1조원을 수혈받게 됐다. 쉽게 말하면, 두산중공업의 사업 부진으로 시중 민간 금융회사에서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어 쓰러질 지경이 되자, 부랴부랴 공적자금 1조원을 빌려준다는 의미다. 민간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말은, 돈을 갚을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두산중공업의 사업구조에 획기적인 변화 없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번 긴급자금 1조원 수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두산중공업의 사업부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매출 비중이 거의 70%에 달하는 석탄화력 부문의 수주가 세계적 탈(脫)석탄 영향으로 감소한 이유가 가장 커 보인다. 기후변화로 촉발된 탈석탄 추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경영 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외부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의 갑작스런 탈원전 정책이다. 두산중공업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가장 높은 원전 사업에 내려진 탈원전 철퇴가 더 뼈아팠을지도 모른다.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불쑥 시작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공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가 자신의 제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자랑을 했다고도 하고, 영화 ‘판도라’를 보고 만들어졌다고도 하니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인수위원회도 없이 개문발차하듯 출범한 정부가 취임 41일 만에 내놓은 탈원전 정책 또한 충분한 토론과 분석이 선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탈원전이라는 정책 목표가 던져지자, 기존의 전원계획은 탈원전 맞춤형으로 거침없이 뜯어고쳐졌다. 8차 전력수급계획이 그것이다. 6개의 신규 원전 건설은 취소되고 6개의 석탄발전소는 LNG발전소로 변경됐다. 불과 2년 전에 작성된 7차 계획과의 연속성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7차 계획을 믿었던 기업들에는 날벼락이었다.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약 10조원의 매출이 날아가 버렸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금액은 몰라도 한 기업이 파산지경으로 내몰리게 된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정부 계획을 신뢰한 기업은 최소한 이 부분에서는 무죄다.

그러면 정부의 정책 신뢰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면서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에너지전환을 통해 얻은 국가적 손익계산서는 어떤가. 최대 12조원까지 흑자를 내던 한전의 1조원이 넘는 적자, 우리 힘으로 키워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온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 감축 계획 수립조차도 난감한 온실가스 증가, 요금 인상은 없다고 했지만 곧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전기료 인상, 중국산에 밀려 퇴조하는 국내 태양광 산업의 현실, 태양광 패널에 누더기 신세가 돼가는 금수강산…. 탈원전의 편익이라고 할 만한 것을 딱히 떠올릴 수 없는 건 무지의 소치일까.

탈원전을 손절매해야 한다. 이 정도의 손실에서 멈춰야 한다. 탈원전 손절매 없이는 한전 경영 정상화도, 원전 수출도, 창원 지역경제 회복도, 온실가스 감축도, 전기요금 안정화도,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원전 생태계 살리기도 모두 공염불이다. 공적자금이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돼 있지만, 두산중공업에 투입되는 긴급자금 1조원은 기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국민의 혈세로 틀어막아야 하는 돈이다. 탈원전을 손절매하지 않은 채 두산중공업에 쏟아붓는 긴급자금은 또 하나의 혈세 낭비로 끝날 공산이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상상하기 어려운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시점이다. 어떻게든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경쟁력이 입증된 기업과 산업은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앞장서서 살려낼 우리 경제의 견인차다. 원전산업은 우리에게 몇 개 없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소중한 산업이다. 탈원전을 손절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