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에서 ‘실업대란’이 현실화됐다. 상점과 공장의 잇따른 셧다운으로 지난주 미 노동부에 접수된 실업수당 신청건수가 328만3000여 건에 달한 것이다. 종전 최대 기록(1982년 69만5000여 건)을 훌쩍 뛰어넘었고, 한 주 전(28만1000여 건)에 비해선 12배 급증했다.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건수는 코로나19가 야기한 일자리 피해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가늠케 한다.

이번 위기의 특징이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급감하는 복합불황인 만큼 실물경제 위기에 따른 실업 급증은 어느 나라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실업대란의 그림자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는 무급 휴직자만 1만 명에 달한다.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삼성중공업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두산중공업 같은 유수의 대기업들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기존 사원을 내보낼 판이니 신규 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취소한 기업이 대다수여서 구직 청년들은 갈 곳도 없다.

실업 쇼크가 코앞에 닥친 만큼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의 효율적 활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량실업에 대응해 대규모 재정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할 게 확실하다면 ‘실탄’을 아끼는 게 현명하다. 재정은 한정돼 있는 데다 미래세대의 자원을 당겨쓰는 것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재난기본소득’이란 명분으로 모든 주민에게 현금을 살포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는 점은 우려스럽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취약계층 선별지원 필요성을 제기한 부천시장을 찍어누르면서까지 1300여만 명의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씩 주겠다는 것은 그 의도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덩달아 재정자립도가 20%대밖에 안 되는 포천 이천 여주 양평 등 경기도 내 기초지자체들이 추가적으로 재난소득을 10만~40만원씩 뿌리겠다고 나서는 것도 안타깝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재난소득을 지원하려면 코로나 사태 피해자와 취약계층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 매출이 급감한 소상공인과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일거리가 사라진 노동약자 등을 선별해 집중 지원해야 생계지원의 실효성이 높아지고 재난소득 취지에도 부합한다. 지원대상을 선별하는 데 행정비용이 크다는 지적도 있지만, 건강보험 자료 등 공공데이터만 잘 활용해도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체계가 방만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여기에 얹어 재난소득을 무차별 살포하는 것은 효과도 미미하거니와 재정만 축낼 위험성이 크다. 아직 최악의 상황이 왔다고 보기 어려운데 재정여력을 소진해버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대처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