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버킷리스트
올봄은 캠퍼스가 유달리 조용하다. 활기찬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해야 할 시기지만 모든 수업이 온라인 강의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학생들을 대신해 개나리며 진달래, 목련이 먼저 캠퍼스를 찾았다. 벚꽃도 화사한 연분홍빛으로 캠퍼스를 물들이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자연과 잠시 멀어진 사이, 봄은 벌써 이만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포스텍 캠퍼스는 여러 식물이 돌아가며 사계절을 채운다. 수많은 봄꽃이 지고 나면 철쭉과 영산홍이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배롱나무꽃이 바통을 이어받아 여름 무더위를 묵묵히 지켜낸 뒤, 단풍과 은행나무가 진한 빛으로 물든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불어오면 피라칸타의 새빨간 열매가 겨우내 추위를 견뎌낸다. 이 식물들은 한 번도 계절을 거스른 적이 없다. 성실하게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캠퍼스의 변화를 알고 지낸 적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출근길에 꽃이 눈에 띄어도 무심하게 지나쳐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고교를 졸업한 이후 약 40년간 공학도로 살았고, 계속 연구해왔다. 인간을 제외하면 소통의 대상은 언제나 기계였다. 인생의 3분의 2를 기계와 소통하는 데 쓴 셈이다. 핑계일지 몰라도 손만 대면 닿는 거리의 꽃과 나무보다 늘 사람과 기계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교수에게 교육과 연구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 이를 후회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60대에 들어서는 부쩍 주변의 자연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의 유일한 버킷리스트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을 여행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젊은 시절엔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봄꽃은 제대로 올라오지 못한 채 금세 져버리고, 여름에 비가 충분히 오지 않으면 가을 단풍도 말라 제 색을 내지 못한다. 캠퍼스를 채운 저 꽃들을 ‘당연하게’ 피우기 위해 저 나무들은 겨우내 많은 준비를 했을 테고, 꽃을 피우기 적절한 시기를 계속 가늠했을 것이다. 내가 일상에 쫓겨 자연을 돌아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조금도 쉬지 않고 말이다.

은퇴하는 날에는 기계와는 거리를 좀 두고, 아내가 제안하는 어딘가로 함께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흙을 밟고 서서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싶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게, 조용히 생동하는 자연을 만끽하며 자연이 품은 커다란 이치를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