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건에도 비판 사라진 일본
'저항 없는 예속'이란 퇴행 현상 심해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
[세계의 窓] 日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속에 당연시되는 개인 희생

도조 히데키라는 이름을 들어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의 전쟁을 개시한 일본 총리다. 주변에선 일본이 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전쟁 계속론자’였던 도조 총리 시절엔 그런 이들이 수없이 희생됐다. 헌병을 동원해 비판자를 감시하는 ‘독재자’ 도조 총리에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고마노 쓰요시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이런 도조와 현 아베 신조 총리를 비슷한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지난 3월 4일자).

아베 정권 들어 부조리한 사건들이 쏟아져도 ‘아베 퇴진’은 언급조차 못 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에는 자민당 내에 아베에 버금갈 후임자가 없다는 점, 우익 기반의 일정 지지율, 야당의 미미한 존재감 등이 있다. 아베 입장에선 나쁠 게 없겠으나, 감지되는 것은 일본 사회의 ‘열화(劣化) 현상’이다. 부조리가 나타나도 그에 대한 문제제기나 저항보다는 “어쩔 수 없다” “하는 수 없다”는 자발적 예속이 늘어가는 느낌이다. 저항 없는 예속을 통해 건전한 논의와 비판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의미에서 열화 현상이다.

지난 18일 모리토모학원 공문서 개찬(改竄: 뜻을 다르게 하려고 문서 일부를 고침)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개찬에 가담했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한 재무성 긴키(近畿: 오사카와 그 주변지역) 재무국 직원의 부인이 남편의 수기(手記)를 공개하며 국가와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 사가와 노부히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모리토모학원 공문서 개찬에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연루된 의혹이 있어 현 정부로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은 아키에 여사가 사학재단인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에 연루된 사건이다.

유서처럼 남긴 긴키 재무국 직원 아카기 도시오의 수기에는 공문서 개찬은 사가와가 주도했다고 적혀 있다. 2017년 2월 17일 아베 총리는 이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국회에서 “나 혹은 아내가 관계돼 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답변했다. ‘냄새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는다’는 속담이 있는 일본이다. 아베의 답변이 있고 난 뒤 사가와 이재국장은 긴키 재무국 통제에 나섰고, 아카기는 그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여러 차례 개찬할 것을 강요받은 아카기는 우울증에 걸렸고, 2018년 3월 공문서 개찬 보도 닷새 후에 자살했다.

수기 공개 이틀 후 아사히신문 칼럼난 ‘천성인어(天聲人語)’는 김지하 시인의 풍자시 ‘오적(五賊)’을 인용하며 모리토모학원 공문서 개찬 사건을 다뤘다. 칼럼은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없어’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는 고급공무원 풍자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사가와 국장은 아베 총리에게는 삽살개로, 아카기 긴키 재무국 직원에게는 사냥개로 비쳐지고 있다.

국가의 잘못에 개인의 진실이 곧잘 묻히곤 하는 곳이 일본이다. 개인의 존엄이 무너져도 일반인들의 반향은 약한 편이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도 대개는 ‘국가 승소, 개인 패소’ 판결이다. 종적(縱的) 사회의 특징이 강한 일본인지라 상사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더라도 저항하기 어려운 특징이 나타난다. 더욱이 정치 문제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몹시 두려워하고 몸을 사린다. 아카기도 수기에서 자신이 처했던 심경을 ‘미칠 정도의 두려움, 고달픔, 이러한 삶이 무엇인가?’라고 적고 있다. 일본에서 문재인 정권이 좌편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아베 정권의 ‘우편향 개인 희생’도 본받을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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