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팬데믹 공포'에 外人 자금 '썰물'…외환보유액 방어막 점검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추세가 심상치 않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가 10조원을 넘었다. 거래일 기준으로 하루평균 6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한국 경제 역사상 가장 많다. 그만큼 이탈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다. 일부 비관론자를 중심으로 “이러다가 외환위기가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는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공통적인 위기 경로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거짓 신호’든, ‘진실 신호’든 위기 징후가 가장 먼저 포착되는 곳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에 의해 CDS 프리미엄이 상승하기 시작해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두 배 이상 벗어나면 외국인 자금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위기 발생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상황이 더 악화돼 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네 배 이상 벗어나면 외국인 자금은 갑작스럽게 이탈 단계로 바뀐다. 위기 발생국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통화가치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시장 개입과 외환시장 안정화 논의가 급진전된다.

이때부터 외환위기 우려가 본격적으로 확산된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위기 발생국 통화가치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외환보유액을 풀기 시작하고, 실물경기도 침체 국면에 들어간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긴급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 CDS 프리미엄이 하락 국면에 들어가지만, 실물경기는 더 침체되고 국민이 겪는 고통은 상당 기간 지속된다.

위기 발생국이 겪는 이 같은 경로는 정책 대응에 중요 단서를 제공한다. 다양한 방지책 가운데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쌓았느냐’가 외환위기 발생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이 자본 자유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자금의 실체는 레버리지 투자(증거금 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를 즐기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이기 때문이다.
[뉴스의 맥] '팬데믹 공포'에 外人 자금 '썰물'…외환보유액 방어막 점검을
IMF 기준 외환보유액은 부족

코로나19 사태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유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서 증거금 부족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대규모로 이탈하고, 그 과정에서 위기가 발생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 놓은 국가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달러 증가하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외환보유액을 ‘국제수지 불균형의 직접적인 보전과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간접적 보전을 목적으로 통화당국이 즉시 사용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교환성이 있고 시장성이 높은 대외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라는 전통적인 목적만을 중시한 외환보유액 개념이다. 하지만 자본 자유화가 진전되고 외환위기가 자주 발생하는 여건을 감안해 새로운 외환보유액 개념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다.

외국인 비중·남북대치 감안해야

특정 국가의 적정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환 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도 외환보유액 보유 동기에 따라 ‘IMF 기준’ ‘그린스펀·기도티 기준’ 그리고 ‘캡티윤 기준’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고 하더라도 적정외환보유액 규모는 크게 차이 나 ‘적정한’ 규모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도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추진돼왔다. 각 대책의 효과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외환보유액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쌓아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 이탈함에 따라 오랜만에 그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표 접근법에 의한 세 가지 기준별로 한국이 처한 특수한 여건 등을 감안해 적합성을 따져보면, IMF 기준은 자본시장을 통한 자본거래의 영향이 갈수록 증가되는 여건하에서는 부적합하다. 최근 들어 이뤄진 적정외환보유액과 관련한 논의 및 연구에서도 IMF 기준에 따라 외환보유액을 쌓으라고 주장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신흥국의 적정외환보유액 개념으로 많이 거론되는 그린스펀·기도티 기준도 마찬가지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 비중이 유난히 높은 이른바 ‘윔블던 현상’이 심하고, 북한과의 대치라는 지정학적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이 기준에 의한 적정외환보유액도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캡티윤 방식은 갑작스러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응하는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불태환 개입비용, 대체투자 상실비용 등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금융안전망 구축, 제2선 자금인 인접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이 방식에 의한 적정외환보유액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지표 접근법에 의한 세 가지 기준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적정외환보유액을 가져갈 것인가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외채 구조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 자유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외국인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 다른 위기와 달리 피해가 커진다는 점을 감안해 각국은 ‘기준 2’ 또는 ‘기준 3’에 의해 적정외환보유액을 산출하고, 이를 잣대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잘못된 정보' 경계해야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1선과 2선 자금을 합하면 5000억달러가 넘는다.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한 적정외환보유액보다 1500억달러 이상 많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레바논 등 일부 신흥국에서 국가채무 상환유예(모라토리엄)가 발생하고 있으나 한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신흥국이면 몰라도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제2의 외환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infodemic=information+epidemic)’, 즉 ‘잘못된 정보’에 해당한다. 여건이 개선되고 있는 미국과 통화스와프 협정만 다시 체결해놓는다면 제2의 외환위기 우려는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