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窓] 국가 간 경쟁 달아오르는 양자컴퓨터 연구
영국 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데미스 허사비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알파고’ 컴퓨터를 생각해본다. 이세돌, 커제 등 바둑 고수들과의 대결로 유명해졌지만,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 및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이뤄진 알파고는 방열(放熱) 문제와 여러 하드웨어 문제를 숙제로 남겼다.

인간 두뇌를 뛰어넘는 계산·논리 기능을 갖춘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두뇌는 1012개의 신경세포가 100헤르츠(㎐) 주파수로 작동하고 있으며, 각각의 신경세포는 1000개가 넘는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돼 있다.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고리는 각각 10㎐의 느린 속도로 작동한다. 각 연결고리에서 8바이트의 정보를 저장하면 전체 신경망을 다 채우는 데 8페타바이트(1페타바이트=1000조 바이트)의 정보량이 필요하다. 신경망이 10㎐로 동작하면 초당 1016개 정도의 이벤트를 처리한다. 이벤트당 10개 명령어를 수행한다면 1017개의 명령어, 즉 초당 100페타옵스(초당 100×1000조 회)의 기능을 두뇌가 수행한다. 그리고 인간 두뇌는 약 25W의 소비전력을 소모하는데, 슈퍼컴퓨터는 2500㎾를 소모한다.

현재 디지털 컴퓨터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양자역학 기반의 양자컴퓨터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큐비트(qubit)란 기본 단위에 의한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에 따른 계산 기능을 기반으로, 현재의 CPU에 준하는 양자 프로세서 기술로 구성된다. 기존 반도체 소자의 전자 속도와 신호간섭, 소비전력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구글, IBM, D-웨이브 등은 초전도 기술을 활용한 양자 프로세서 기술을 접목해 특정 영역에서 기존 슈퍼컴으로 수년 걸리는 계산을 단 몇초 만에 계산하는 결과를 내놨다. 또 이온큐(IonQ)는 광학메커니즘 기반의 이온트랩을 양자 프로세서로 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 내년께 100~200큐비트의 양자컴퓨터로 일부 기능이 기존 슈퍼컴보다 우수하다는 ‘양자우월성’을 증명하려 한다. D-웨이브의 2000Q 양자컴퓨터는 25㎾ 전력 소모로 기존 슈퍼컴퓨터의 100분의 1 정도 수준을 제시했다.

양자컴퓨팅과 시뮬레이션은 암호 해독, 정보보안 능력, 대형 선형시스템 설계, AI와 머신러닝의 정확도 향상, 미래 소재 및 신약 설계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양자 계측과 감지는 원자시계의 양자 진동 정확도를 향상시키고, 양자가속기와 중력감지 능력은 잠수함의 보안성과 외부통신이 필요없는 자율 항해를 가능하게 한다. 양자전자 및 자장센서는 생체 내 단일세포 정보를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바로 영상화하고, 독립형 전자단층 촬영도 가능하게 한다. 양자 통신은 양자 상태의 정보 복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신의 비밀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2014년 양자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국책과제로 삼아 2억7000만파운드(약 4500억원)를 투자키로 하고 연구 거점을 5개 만들었다.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임페리얼대가 참여해 현재 2단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당시 한국 과학·산업계에 이 분야의 연구를 독려했다. 그러나 전문인력이 부족해 최근에야 정부 주도로 과제를 준비하는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도 거대 국책과제를 정해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양자컴퓨터 분야 연구가 너무 늦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