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脫원전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올랐다. 우리의 문화역량을 세계에 과시한 쾌거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완벽했다. 작품상 발표자로 제인 폰다를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폰다는 1960년대 시민권 운동에 참여했고, 1970년대 반전시위를 벌이다 다섯 번 체포됐을 정도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대표적 할리우드 배우다. 사회적 모순을 주제로 다룬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발표할 배우로 더할 나위 없었다.

폰다의 사회운동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활동에 자극받아 작년 10월 11일부터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금요일 소방훈련’이라는 기후변화 방지 시위를 이끌고 있다. 시위가 끝나면 어김없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반복돼 ‘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여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후변화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한 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화석에너지를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과 같은 무탄소에너지로 대대적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폰다를 비롯한 많은 환경운동가는 대체로 원자력을 배격한다. 실제로 폰다는 미국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표면을 뚫고 지구 반대편인 중국까지 오염시킬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원전 공포 영화 ‘차이나 신드롬’에 출연하기도 했다.

폰다의 ‘금요일 소방훈련’은 탈(脫)석탄으로, ‘차이나 신드롬’은 탈원전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주장을 모아놓으면 모든 에너지를 궁극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으로 수렴된다. 판타지다. 무책임한 주장이다. 대량의 전기를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적어도 그렇다. 전기 저장 없이 태양광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찬란한 조명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은 배터리가 유일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배터리 기술이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가운데 ESS 화재 원인이 배터리에 있다는 정부의 최근 발표는 배터리의 불안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저장 능력도 형편없다. 한국에 설치된 ESS 총용량은 2018년 말 현재 4.8GWh 정도 된다. 2018년 하루 평균 전기발전량이 1625GWh이므로, 설치된 ESS를 가득 채운 전기로는 단 4분여를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다. 결코 믿을 만한 비상 전력원이 될 수 없다.

배터리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면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는 ‘백업발전’이 필수적이다. 바람 한 점 없는 그믐밤을 밝혀줄 화력발전이나 원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력계통이 섬나라처럼 고립돼 전기의 수출입이 불가능한 한국에서 백업발전은 더욱 중요하다. 가스는 석탄보다는 덜하지만 이산화탄소를 여전히 배출한다. 더욱이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안보, 경제성 측면에서 가스를 무작정 늘릴 수 없는 노릇이다. 원전은 현재 기술로서는 비용 효과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가장 확실한 전원이라는 사실을 불편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상생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인정하게 된다.

‘금요일 소방훈련’과 ‘차이나 신드롬’은 현실 세계에서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폰다의 모순이다.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로 요약되는 한국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