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외로운 콩쿠르 심사
나는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를 자주 하는 편이다. 2000년 초반 무렵부터 부르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초대하는 콩쿠르에 전부 응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처음에는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콩쿠르에 한국 심사위원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심지어 세계 최고 권위 콩쿠르 중 하나인 영국의 리즈 국제 콩쿠르와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한국인 심사위원이 나를 포함해 두 명인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음악 강국이 됐다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콩쿠르라는 것은 열 명 안팎의 심사위원이 모여 대여섯 명의 입상자를 골라내는 과정만 있는 게 아니다. 주최국의 귀빈들이 참석하는 행사, 각국에서 모여든 매니저들의 프레젠테이션, 외신 기자들의 기자회견, 콩쿠르 스폰서들을 위한 파티, 심사위원 소속 국가의 외교관 초청 만찬 등 말 그대로 각국 정상이 모이는 정상회담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런데 나는 이런 정신없는 일정 중에서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 아무리 돌아봐도 한국인 매니저도, 기자도, 외교관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수많은 참석자 중 한국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그렇게도 많은 우리 영재들이 실력을 뽐내며 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냉랭하다. 항상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최근에야 깨달은 것이 있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우리나라에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조상의 혼과 얼이 담긴 가야금 콩쿠르가 있었다. 그런데 한 10년 전부터 금발을 한 외국인들이 참가해서 훌륭한 기량을 보여줘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 많은 격려를 해줬다. 급기야는 상을 받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콩쿠르 때만 되면 떼로 몰려와 상을 모조리 휩쓸고 돌아가서는 전혀 소식이 없다가 다음 콩쿠르 때가 되면 다시 군단처럼 몰려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어떻겠는가? 결코 그들이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현재 국제 콩쿠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상을 받는 것만 생각했지 그들의 전통과 자존심이 담긴 콩쿠르 입상자로서의 품격은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들과 소통하고 스킨십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자들, 기획사와 외교관들이 얼굴을 비치고, 콩쿠르를 후원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겨날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릴 것이고 비로소 우리 영재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다음 심사할 때는 외롭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