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00세 시대'의 45세 명퇴
공자는 마흔에 불혹(不惑), 쉰 살이 되면서 지천명(知天命)의 경지가 됐다고 했다. 성인 반열에 드는 대사상가가 말년에 남긴 예지와 성찰의 회고다. 보통 사람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달관이겠지만, 2500여 년 전 시대상을 유추해보면 수긍도 된다. 무엇보다 해마다 반복되는 농경이 주축이었던 고대에는 사회도, 개인의 삶도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수명이 길지 않던 시대여서 40~50세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노장 그룹에 들어섰을 만하다.

과학과 기술,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많이 바꾸었다. 특히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고령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미답의 시대에 들어섰다. 대표적인 게 갑자기 길어진 노년, 생업에서 벗어나고도 30~40년씩 이어지는 은퇴 이후 생활이다. 현대 인류가 함께 부딪힌 새로운 과제다.

급증한 수명과 급변한 사회상은 ‘4050세대’에 더 많은 역할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아직은 젊고, 역동적인 때다. 불혹 지천명 같은 ‘도인’의 지혜나 달관 대신 생활인으로서의 구실과 책임이 필요한 시기다. 물론 인생의 황금기요, 일하는 데 재미가 붙을 만한 장년(壯年)기다. 4050세대에 진입하면 역량도 쌓이고, 경제력 외에 이런저런 권한도 더 생길 것이다. 그 이면으로 돈 지출도 급증한다. 주택대출 상환은 한참 남았을 테고, 자녀 학비도 만만찮다. 경조사비에 이따금 ‘성의’라도 보여야 할 부모도 양쪽에 있다. ‘생활수준이 나아졌다’ ‘소득이 늘어났다’는 것은 ‘필수 지출이 많아졌다’와 같은 의미다. 두 어깨에 삶의 무게가 느껴질 나이다.

4050들은 경제에서도 중추다. 그런데 생업에서 밀려나는 4050이 급증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기술직·사무직 할 것 없이 총 2600명 중 1000명 이상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발전산업 불황이 한국의 대표 중공업 기업을 강타한 것이다. 탈원전 3년의 후폭풍이 무섭다.

모기업이 이런 판이면 수백 곳 중소 협력업체는 더할 것이다. 휴업과 폐업, 명예퇴직과 조기퇴직, 정리해고, 사업부진, 임시·계절적 사업종료 등으로 퇴직하면 ‘비자발적 퇴직자’가 된다. 지난해 48만8544명으로 5년 만에 제일 많았다. 누가 이들을 일터 밖으로 내몰고 있나. 사회의 허리인 4050세대 실업자가 급증한다는 게 국가 장래에는 어떤 신호일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