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우한 폐렴…국가란 무엇인가
‘무오년 역병’으로 불린 스페인독감이 한반도에 들이닥친 때는 1918년 말이었다.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유입됐다고 한다. 1600여만 명의 인구 중 740여만 명이 감염됐고, 14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101년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 진원지로 추정되는 전통시장은 올해 1월 1일 폐쇄됐다. 하지만 전염병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918년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암담한 시대였다. 독감의 발병 원인은 물론 유입 경로도 몰랐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어엿한 주권 국가다. 그것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다. 발병 지역과 유입 경로도 알고 있다.

국가의 기본 역할은 국민의 안전 보장이다. 적뿐만 아니라 전염병으로부터도 국민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정부 모습을 보면 국민 안전에 대한 의식이 확고한지 의심스럽다. 신임장을 받지도 않은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언론 인터뷰와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방역정책에 간섭하는 내용의 발언을 잇따라 했는데도 아무 반발이 없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얼마 전 “북한 개별관광 허용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청와대와 여당이 격하게 반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는 어땠을까. 20년 전인 1988년 광우병이 사람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1990년대 들어 원인 규명도 끝났다. 판매 금지 및 대대적인 살처분이 이뤄졌다. 세계보건기구(WHO)뿐만 아니라 의학계 전반이 ‘소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야당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결사반대했다.

정권을 잡자 태도가 달라졌다. ‘공식 발표하지 않은 정보는 다 가짜뉴스’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한 폐렴 명칭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쓰도록 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데, 어떻게 구별하라는 말인가.

우한 폐렴은 발견된 지 두 달밖에 안 돼 그 위험성을 예측하기 어렵다. 우한 폐렴의 유전물질은 유전자가 변이되기 쉬운 RNA(리보핵산)다. 시간이 가면서 독성이 약해질지, 아니면 어느 순간 돌연변이를 일으켜 맹독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 스페인독감도 1918년 봄 처음 나타났을 당시 독성이 약해 ‘스페인 숙녀(Spanish lady)’라고 불렸지만 그해 가을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돌변했다.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세계화 시대에 전염병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염 확산을 막는 일은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감염자 수를 관리 가능한 범위 내로 통제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각국의 방역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이 중국 방문자 입국을 금지한 이유다. 중국이 발표한 우한 폐렴 감염자는 2만 명, 사망자는 400명을 이미 넘어섰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감염자 수가 중국 전역에서 10만 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정부는 후베이성 방문자에 대해서만 입국을 금지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뒤늦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관대한 조치다. 한국의 방역 능력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중국 눈치 보기인가. 아니면 방역 능력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일까.

한국은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때 모범 퇴치국 소리를 들었다. 사스와 메르스 때는 여러 실수가 있었지만 방역 체계가 무너지진 않았다. 국민의 활동도 크게 제약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국회의원 총선거 등 다른 고민거리가 많아 보인다. 국민 안전과 중국과의 관계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도박’이다. 방역이 무너지면 우리 국민이 다른 나라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제 정부에 던져야 한다.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