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석유시장은 공급과잉 상태
초대형 지정학적 리스크 없다면
연평균 가격 작년 수준 유지할 듯"

이달석 < 에너지경제연구원·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 >
[분석과 전망] 국제유가, 작년보다 높아질 이유 없다

국제 유가가 연초부터 큰 폭으로 등락하고 있다. 미국의 드론 공격에 의한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피살과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보복 공격으로 급등했던 유가가 다시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 대신 경제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다.

이처럼 급등했던 유가가 곧바로 하락한 것은 미·이란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낮아진 데 원인이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중동 정세 불안에도 불구하고 올해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이 반영된 때문으로 보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월부터 감산 규모를 늘리기로 합의했고 세계 석유수요 증가세도 회복되겠지만, 미국의 생산 증가가 이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석유수요는 예년 수준인 하루 120만 배럴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그룹의 수요는 정체되겠지만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수요 증가가 여전히 세계 석유수요 증가세를 주도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원유 생산은 속도는 느려져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미국에서 석유 탐사와 생산 투자는 지난해보다 약간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투자자들의 요구로 생산 확장보다는 현금 확보 쪽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셰일오일 업체들은 시추는 완료했으나 생산을 시작하지 않은 미완결유정(DUC)의 완결을 통해 생산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완결유정 수는 3년 전에 비해 30% 넘게 늘어나 있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의 원유·천연가스액(NGL) 생산이 하루 16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노르웨이의 신규 유전 가동에 따른 증산과 브라질, 캐나다의 증산 물량 등을 합하면 비(非)OPEC 산유국의 전체 공급은 지난해보다 하루 200만 배럴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미국 등 비OPEC 공급 증가분은 세계 수요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OPEC과 러시아는 기존에 합의한 감산량을 확대하기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자발적인 추가 감산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들이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 균형을 위해 요구되는 만큼의 생산 감축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와 나이지리아가 지난해 감산은커녕 증산을 했고, 러시아도 감산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해 국제 석유시장은 공급 과잉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반기는 하반기에 비해 계절적으로 석유 수요가 둔화되는 기간이어서 감산 참여국들이 약속을 지키더라도 공급 과잉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급 요인만으로 보면 올해 연평균 국제 유가가 지난해보다 더 높아질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중동 정세는 예측 불가능하고 석유의 공급 차질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된 불안 요소도 많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JCPOA) 파기와 경제 제재에서 비롯된 미·이란 대립은 적어도 연말 미국 대선 때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중동의 주요 석유공급시설이 손상되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종파 분쟁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내전이 시아파 승리로 종결되는 양상이므로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는 더 치열하게 이란과의 대리전을 전개할 것이다. 또 지난해 10월 터키가 시리아에서 쿠르드 민병대를 공격함으로써 중동 내 쿠르드 종족 갈등 문제도 심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 중동 정세 불안은 석유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국제 유가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형성할 수 있다.

어쨌든 올해 석유 수급 상황에 비춰 볼 때 대규모 공급 교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연평균 국제 유가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따라서 유가는 올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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