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욕망의 덧없음 보여주는 파격 스토리 '스위니 토드'
복수심에 불타는 이발사는 무작위로 손님들의 목줄을 끊고, 아래층에선 인육(人肉) 파이를 만든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무대 모습이다. 요즘 국내 공연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기작이다.

자극적인 것을 즐기는 요즘 세대의 도발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작품은 1978년 처음 막을 올린 손꼽히는 명작 뮤지컬이다. ‘마니아들의 영웅’으로 불리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충격적인 소재와 반전의 결말, 현대음악을 방불케 하는 불협화음 위로 수놓아지는 수려한 멜로디의 뮤지컬 넘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이미지 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선 공연보다 뮤지컬 영화로 먼저 유명해졌다. ‘가위손’ ‘비틀주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을 만든 영화감독 팀 버튼이 2007년 선보인 스크린의 인기 덕분이다. 강렬한 색채와 독특하고 별스러운 감각으로 팀 버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학창시절 무대용 뮤지컬을 보고 심취한 버튼이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 영화 판권을 획득하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이 덕분에 스크린은 무대와는 사뭇 다른 시각과 변주 그리고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거쳤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뮤지컬 영화와 원작 무대를 비교하며 세세하게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수수께끼’에 열성적으로 도전하는 마니아 관객도 많다.

국내 무대에선 2014년 처음 막을 올렸다. 애호가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와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손드하임의 작품답게 대중적인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2016년 앙코르 공연에 이어 올해 무대에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는 인상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화끈한 스타 마케팅을 접목한 점이 두드러지는데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가 참여한 연쇄살인마 스위니와 옥주현 김지현 린아가 빚어내는 파이가게 주인 러빗 부인, 관록의 서영주 김도형과 실력파 신예 최서연 등의 조화가 ‘별미’를 완성한다. 쏟아지는 대사와 노래,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을 적절히 소화해내는 출연진의 모습이 박수갈채를 이끌어낸다.

쉽지 않은 원작의 노랫말을 재치 넘치게 의역한 제작진의 노력도 숨겨진 흥행 요인이다. 원래 영어 가사엔 없는 재치와 유머를 더했다. “신혼부부로 만든 고기파이에 뿌려야 하는 기름은 아이 러브 유”라든지 “깨끗한 맛이 나는 목사 고기파이는 한국산도 호주산도 아닌 에덴동산”이란 표현이 그렇다. 워낙 마니아 팬이 많은 작품이라 그로테스크한 원작의 섬세한 맛에 ‘허무개그’라는 설탕과 조미료를 마구 뿌린 것 같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난해한 음악 구조를 재치 있게 변화시킨 제작진의 노력이 가상하다는 평이 절대적이다. 좀처럼 티켓을 구하기 힘든 대중적 인기는 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증오와 복수에 눈이 먼 주인공이 눈앞에 있는 본질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광기 어린 핏빛 칼날을 마구 휘두른다는 내용은 인간의 욕망과 분노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지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후 계급 갈등, 빈부 격차가 극심했던 19세기 영국을 통해 보는 삐딱한 시선이 예술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뮤지컬 하면 드레스 입은 궁중 무도회나 왕가의 비리, 솜사탕 같은 귀족들의 연애담이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일단 한번 보고 나서 얘기하라”고 시비라도 걸고 싶다. 종연이 임박했으니 서둘러 무대를 찾길 권한다.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