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단단한 자아'가 행복의 근원
시류에 떠돌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길

이주영 < 문화칼럼니스트·영상 연구자 >
[문화의 향기] 능력주의와 나만의 꽃밭

불과 달력 한 장 넘긴 것뿐인데, 무언가 꽉 찬 느낌의 2020년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료 토정비결 사이트가 돌아다닌다. 평소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이때만 되면 굳이 운세를 찾아보는 것은 왜일까.

주역 마니아였다고 알려진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를 ‘동시성의 원리’라고 풀이했다. 흔히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라고 이해하는 이 동시성의 원리는 타로점의 신비한 적중률을 설명하는 데도 쓰인다. 대입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들이 자녀의 당락을 예지몽으로 꾸는 경우나, 아침부터 먹고 싶던 떡국이 점심 메뉴로 나온다거나, 원거리에서 다른 가족이 다치면 컵이 깨지는 경우도 동시성의 원리로 해석한다.

2019년 드라마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23.8%)을 기록한 ‘동백꽃 필무렵’(KBS)의 인기도 이 동시성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연말 연기대상에서 12관왕을 차지한 이 드라마는 지난해 11월 종영될 때까지 수많은 동백이를 커밍아웃하게 했다. 고아에 미혼모인 주인공 동백이(공효진 분)와 향미(손담비 분)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아를 인식하며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용기와 믿음을 주는 동백이의 든든한 후원자 용식이(강하늘 분)나, 편견을 갖고 구박했으나 결국은 가족처럼 품어낸 마을 주민들의 변화는 엘리트 위주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능력보다는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라고 안내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잘난 기준에 헐떡거리는 서민들에게 “각자의 꽃밭을 가꾸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동백이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처럼 모두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포기하고 싶을 때 괜찮다며 일어날 힘을 준 드라마가 ‘동백꽃 필무렵’인 것이다.

희망의 불씨가 꺼져갈 때 정치의 순기능을 돌아보게 한 ‘보좌관2’(JTBC)도 같은 의미로 주목할 만하다. 오랜 정경유착을 경찰 출신 국회 보좌관 장태준(이정재 분)이 결국 국회의원이 돼 치열한 접전 끝에 폭로하고 단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의 결정적 증거는 법무부 장관(김갑수 분)의 운전기사(전진기 분)인 한 서민으로부터 비롯됐다.

“하나의 빛이 모든 밤을 밝힐 수 없다”며 세인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거나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약자가 보호받고 죄지은 자는 처벌받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지금까지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은 폐부를 찌르는 대사는 현실 정치와 맞닿아 있어 더욱 몰입하게 한다.

직업인으로서 교사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블랙독’(tvN) 역시 교육계의 약자인 기간제 교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강남 일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부종합전형과 정시로 대비되는 한국의 대입제도를 교사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어 학생과 부모 간 갈등이 중심이었던 기존 학원물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열정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신입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 분)과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진학부장 박성순(라미란 분)이 교권과 인권보다는 능력 제일주의로 치닫는 사회 전반과 학교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선배의 지인인 주역 전문가가 2020년 운세를 주역 64괘 중 20괘인 풍지관(風地觀)과 2020을 합한 40괘 뇌수해(雷水解)로 풀이한 적이 있다. ‘스스로와 주변을 보고 또 보며 힘을 키우다 보면 어떤 어려움도 다 풀린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 자신의 힘을 키워 나만의 꽃밭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면 막힐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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