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창의와 혁신의 장소-옥스브리지 이야기Ⅰ
영국 옥스퍼드대는 39개 칼리지에 60여 개의 학과가 있다. 각 칼리지는 독자적인 작은 종합대학이라고 할 정도로 조직과 재정이 독립적이며, 각 학과 소속 소수의 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수평적으로는 칼리지, 수직적으로는 각 학과가 구성되고, 교수 요원은 칼리지에서는 펠로(fellow)란 이름으로, 학과에서는 정교수·부교수로 활동한다. 이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에만 있는 일종의 매트릭스(matrix) 제도다. 나는 과거 옥스퍼드대에 재직할 때 세인트휴 칼리지 펠로이자 전자공학과 학과장이었다.

신규 교수를 뽑을 때는 반드시 소속 칼리지와 학과가 먼저 합의한다. 칼리지 펠로 대표와 학과 교수 대표 등 8명 내외가 참여해 선발한다. 각 칼리지 펠로는 학과에 와서 강의하고 점심식사는 소속 칼리지 교수회관에서 한다. 고급 호텔 수준으로 중식이 무료 제공되는데, 다른 전공의 펠로들과 어울릴 수 있다. 또 다른 칼리지의 펠로나 외부 인력 2명까지 초청할 수 있다. 이들과 식사하며 융합 연구나 공동연구 과제를 발굴하기도 한다. 칼리지 안에서는 의학,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응용과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도 어울릴 수 있어 서로 창의적 융합 연구를 하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제도로도 운영된다.

융합과 창의의 장(場)은 교수진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뤄진다. 학기 중에는 튜토리얼(tutorials)이라고 해서 학생은 칼리지나 학과의 전담 교수에게 1 대 1 교육을 받는다. 교수가 학생 2~3명을 맡아 1주일에 몇 시간씩 다양한 교육을 하는 일종의 개인교습이다. 일반 강의에서는 배우기 힘든 창의력과 사고의 융통성, 융합적인 사고 등을 기를 수 있다. 옥스퍼드대에는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라는 정치학, 철학, 경제학이 통합된 학과가 있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학과는 융합 학문의 첫 모델로 간주된다. 지난 5월에는 39번째 파크스 칼리지(Parks college)가 생겼다. 칼리지라기보다는 ‘옥스퍼드대의 학과(Department of University)’라고도 불린다. 옥스퍼드가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분야인 인공지능(AI) 및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사회과학·신경과학·생물학 통계·공학·컴퓨터 등 분야 포함), 환경변화(environmental change, 에너지시스템·생물 다양성·보존·기후·수질·경제·역사 분야 포함), 세포생명학(cellular life, 생명체·세포·사멸 등에 의한 원인, 치료 등 전문 분야 포함)의 세 분야를 처음으로 융합 학문으로 전문화해서 연구하는 칼리지다.

J R 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C S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이 옥스퍼드에서 탄생했으며, 100년이 지난 지금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며 수조원의 신산업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옥스퍼드대의 창의와 혁신 행위를 지원하는 전통과 제도, 1000년 역사의 튼튼한 교육 그리고 발 빠른 융합 연구에 대한 대응전략 육성 및 토양 조성 등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