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의 일반적인 근로계약서는 첫 문장에 ‘임의고용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근로계약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직할 수 있듯이, 사용자도 언제라도 어떤 이유로든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기본법은 관습법이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내용은 최저임금, 초과근로급여, 기록 보관, 아동·훈련생·학생·장애인의 근로기준 등으로 간단하다.

반면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일반해고는 불가능하고, 정리해고도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5월 제정된 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쳤지만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유계약의 원칙에 우선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서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조항은 일을 더하기를 원하는 근로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한국 기업의 임금체계는 기본적으로 호봉제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그 위 근로자들의 임금도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정부지만, 그 부담은 온전히 기업이 짊어지게 된다. 영세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2017년부터 2년간 29.1% 오르면서 경제성장률이 연 0.54%포인트씩 하락해 향후 5년간 205조원의 국내총생산(GDP) 감소가 예상된다. 초과근로급여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중식대·업적연봉 등이 포함되는 데 따라서도 경제성장률이 연 0.13%포인트씩 하락, 향후 5년간 47조원의 국내총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정책의 직격탄을 한 가구의 가장인 ‘40대 남자’가 맞고 있다. 2016년 11월 93.3%였던 40대 남자의 고용률은 2017년 11월 92.6%, 2019년 11월 90.8%로 3년 새 2.5%포인트 떨어졌다. 근로시간을 고려한 총노동투입량의 변화를 보면 이런 추세는 더 뚜렷해진다. 40대의 총노동투입량은 2017년 5월 대비 2019년 5월 8.8%(연 14억1000만 시간) 줄었다. 남녀를 구분해 보면 각각 8.6%(연 8억6000만 시간)와 9.2%(연 5억6000만 시간)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9일 40대 일자리 정책을 끼워넣은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는데, △40대 구직자 채용 기업을 위한 고용촉진장려금 지급 △창업 컨설팅 제공 정도가 고작이다.

한 가지 해결책으로 노동중개업 활성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금융시장에는 자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중개하는 금융업체가 발달해 있다. 노동은 자본보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더 심각한데 기업과 근로자를 중개하는 노동중개업체는 매우 적다. 노동중개시장이 커지면 일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노사관계 안정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성장동력산업으로서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도 크다. 금융업체와 비슷하게 노동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적절한 교육훈련·정보제공·상담·취업알선·전직지원, 취업 후 노사 고충처리뿐만 아니라 직접 파견 및 용역 근로자를 제공하는 종합적인 민간 인력회사가 필요하다.

민간 노동중개업체 설립·운영을 가능하게 하려면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이다. 근로기준법에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간병인, 파출부 등은 소속회사에 소개 건당 수수료가 아니라 월회비를 납부하는 식으로 우회하고 있다.

기업은 제품·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종업원을 고용하므로 기업이 잘 돌아가면 그 과정에서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일자리 그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되며, 기업하기 좋은 노동시장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그리고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