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헥시트' 이후 시나리오 준비돼 있나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시위 사태가 만 6개월이 지났다. 지난 8일에는 8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홍콩 사태의 본질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자유주의 가치체계’의 충돌로 읽힌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베이징이 ‘홍콩의 중국화’를 밀어붙이자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맞선 것이다. 신(新)냉전이 홍콩에서 대리전으로 점화된 양상이다. 선전에서 카오룽으로 부는 바람은 ‘홍콩에서 밀리면 티베트와 신장, 나아가 대만에서도 밀릴지 모른다’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전하고 있다.

문제는 홍콩의 특수성이다. 홍콩은 중국 내륙과 달리 개방된 공간이다. 시위는 전 세계로 실시간 중계된다. 지난달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는 ‘시위의 배후가 대다수 홍콩 시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켰고, 이는 미국의 속전속결 ‘홍콩 인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미 항공모함의 홍콩 입항을 불허하고 시민단체에 대한 보복에 나섰지만 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홍콩인들의 불만은 본토의 정치적 억압에 국한된 게 아니다. 이민자 문제도 그중 하나다. 2007~2016년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 본토인 수는 총 44만5900명이다. 베이징어를 쓰는 이들이 홍콩의 고유문화를 위협한다고 홍콩인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 정부의 설명은 다르다.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 홍콩을 위해 매년 25~34세 본토 청년을 약 4만5000명씩 보냈다는 것이다.

대학도 불만의 단골 메뉴다. 홍콩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본토 유학생 수는 2005년 4112명에서 최근 3만 명으로 늘었다. 학부생은 2000명 전후로 중국 유학생 대부분은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들 중 절반 정도는 졸업 후 홍콩에서 직장을 잡는다. 이들이 대학 장학금도, 좋은 일자리도 다 빼앗는다는 게 홍콩인들의 불만이다. 중국인 유입으로 집값 또한 뉴욕 맨해튼 수준으로 폭등했다. 현재 홍콩 집값은 저점인 2003년의 5배 수준이다.

홍콩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올 3분기 홍콩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2.9%로, 10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26.6% 감소했다. 다행인 것은 금융 불안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콩 은행 간 금리(HIBOR, 3개월 기준)와 홍콩달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알리바바의 홍콩증시 상장 등도 금융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 대응 전략을 가져가야 할까. 우선 홍콩에 노출된 실물 및 금융 거래 규모와 추이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한국 수출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약 7.5%, 금액으로는 반도체 336억달러를 포함한 총 460억달러다. 이 중 80%는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금융의 경우 한국의 대(對)홍콩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개별기업은 다를 수 있다.

홍콩 경제 규모는 중국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이나 해외 상장 혹은 역외 위안화 지급 결제 등에서 그 역할은 절대적이다. 홍콩 사태가 계속 악화돼 중국의 무력개입이 현실화하고 미국이 홍콩 인권법에 의거해 관세·비자 등에서 홍콩 소재 기업들이 누려온 특혜를 폐지한다면 대규모 투자 회수나 상장 연기 혹은 뱅크런 등으로 홍콩에 일시적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홍콩의 금융 허브 역할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나 상하이, 선전 등이 대체지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홍콩의 유효성은 단기적으로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

한국으로서는 홍콩의 위험 요인을 점검해 대(對)중국 수출 거점을 서서히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정해 홍콩 중계무역의 최적 대체지와 효과적인 중국 직접 진출 방안도 마련해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