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세계 주요 증권시장이 한껏 달아오르는 가운데 한국 시장은 지지부진이다. 3대 지수(다우존스·나스닥·S&P500)가 연일 치솟는 뉴욕증시의 거침없는 질주는 놀라울 정도다. ‘왕따’ 당한 듯 ‘나홀로 약세’를 보이는 한국 증시는 무엇이 문제인가. 해묵은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과소평가받는 것인가. 정부의 장담과 달리 우리 경제에 구조적 취약점이 심해지면서 펀더멘털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당장의 걱정은 외국인 자금의 한국 증시 이탈이다. 최근 한 달 새 외국인들이 팔아치운 주식이 5조원어치에 달한다. 채권에서도 돈을 빼려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올해 주가상승률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최하위권인 18위다.

침체된 한국 증시의 무기력증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물 경제 반영물이 주식시장이란 점에서 보면 우리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지도 한참 됐다. 생산과 투자, 고용과 소비 어디 한 군데 좋은 지표가 없다. 간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동향 12월호’에서 12개월째 떨어지고 있는 수출을 비롯해 광공업 생산, 제조업 평균가동률 등의 저조한 지표를 제시하면서 우리 경제가 9개월째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KDI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는 경기 상황에 대해 ‘둔화’라고 했던 것을 돌아보면 지금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가늠할 만하다. 섣부른 규제 정책이 신규 투자를 가로막는 분야가 건설만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2020년 기업경영 전망 조사’를 보면 내년 경기도 어둡다. ‘장기형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응답이 65%에 달했고, 긴축경영에 돌입한다는 기업이 47%를 넘었다. ‘확대경영’은 19%에 그쳤다. 자영업자들에 이어 기업도 벼랑으로 내몰려 있음을 보여준다.

다락같이 오른 최저임금부터 아직도 문제가 풀리지 않은 주 52시간 근무제 등 일련의 친(親)노조 정책을 보면 기업이 사업을 적극 펴 주가를 올릴 계제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수용해 기업 활력을 꺾는 것이나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기업경영 간섭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시하며 파장을 계산할 것이다. ‘혁신성장’을 외치면서도 정부·국회가 한통속으로 ‘타다 금지법’을 만들어 공유경제의 기반을 허물고 성장잠재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데 누가 장기 투자를 하겠는가.

한국 증시의 비(非)활력 무기력증을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봐야 냉철한 진단일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도 질주하는 미국 증시 뒤에는 110개월 연속 늘어난 일자리, 50년 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3.5%) 등 미국 경제의 튼튼한 펀더멘털이 있다. 규제완화, 감세 등 트럼프 행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거둔 성과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특히 ‘변동성’을 기피한다. 기업실적이 떨어지는 판에 ‘정책리스크’가 변동성을 키우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증시가 잊혀진 존재가 되면 펀더멘털 건전성 논쟁도 부질없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