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회가 올해도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을 놓고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어 국회 파행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도 예산안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상습적인 예산안 지각 처리는 국회의 대표적인 악습이다. 여야는 이런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예산안 자동 부의(附議)제도’를 도입했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첫해(2014년)를 제외하고 5년 연속 법정 시한을 어겼다. 국회가 자신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으니 ‘집단 배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법정 처리 시한을 어긴 것도 문제지만 부실·졸속 심의 우려가 커진 것이 더 큰 문제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다가 막판에 밀실에서 그들만의 ‘예산 나눠먹기 잔치’를 벌이는 게 이제는 관행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예산심의 지연이 초래한 파행적 기구인 교섭단체 3당(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간사협의체(소소위원회)는 국회법상 공식 기구가 아니어서 심의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 나라살림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는 탓에 여야는 물밑 거래와 흥정을 일삼기 일쑤다.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어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513조5000억원 규모의 ‘초(超)슈퍼예산안’ 중 선심성 복지정책과 현금 뿌리기 사업을 철저히 가려내겠다고 공언했지만 말뿐이다. 17개 상임위 중 예산안을 의결한 국토교통위와 교육위 등 12개 상임위는 ‘칼질’ 대신 증액에 바빴다. 안성~구리 고속도로(3063억원 증액)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통장·이장 수당 지원 등 표심을 겨냥한 지역·민원 사업에 9조3910억원이나 증액했다. 여야가 ‘밀실 담합’으로 서로 ‘사익’을 챙기기 위해 예산안 처리를 의도적으로 미루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도대체 국회의 존재 이유가 뭐냐”는 비난이 나온다.

헌법에 예산안 처리 시한을 규정한 것은 이것이 그만큼 중요한 업무라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고 나라 살림을 감독하는 것은 국회의 주요한 양대 역할이다. 예산안 졸속 처리와 담합을 막을 근본 처방 마련이 절실하다. 예산안 심의 기간을 늘리고 심의 기구(예결위)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모든 예산 관련 회의 내용을 공개하고 속기록으로 남기는 등의 조치도 시급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예산 관련 위원회를 상설위원회 체제로 가동한다. 심의 기간도 4~5개월(영국·독일·프랑스)에서 8개월(미국)에 달하고,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국회와 행정부가 협의한다. 반면 한국은 회계연도 120일 전에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만 국정감사 등에 밀려 11월이 돼야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간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예산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는 이제 ‘부실·지각 예산안 처리’ 적폐를 어떻게 끊을 것인지 답을 내놔야 한다. 유권자들도 눈을 부릅뜨고 여야 의원들의 예산안 심의 행태를 지켜보고 내년 총선에서 후보자 선택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만의 국회’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