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1년 새 87만 명 늘어 748만 명(전체 근로자의 36.4%)에 달했다는 통계청 발표는 충격적이다. ‘비정규직 제로(0)’를 내건 정부로선 ‘고용 참사’에 가까운 성적표에 당혹스러울 것이다. 통계청은 조사방식 변경으로 과거 포착되지 않던 기간제 근로자 35만~50만 명이 더해졌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최소 37만 명이 더 늘었다. 비정규직 증가폭이 지난해(3만6000명)의 10배를 웃돈 것은 뭐라고 설명할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 창출에 올해 23조원 등 3년간 61조원을 쏟아부은 대가가 비정규직 폭증이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원인은 자명하다. 경제활력 저하로 정규직이 8년 만에 감소(-35만 명)한 반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친(親)노조 정책을 펴온 정부가 그 부작용을 ‘노인 알바’ 등 공공일자리를 늘려 땜질해 온 결과다. 투자·소비 부진 속에 자영업이 초토화됐고,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견디다 못한 중소·중견기업의 탈(脫)한국 러시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근본원인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만 가는 고용과 임금의 경직성에 있다. 비정규직 양산의 배경에, 한 번 고용하면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평생 고용하고 호봉제 임금을 줘야 하는 정규직 과보호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학자들이 누누이 지적해온 대로다. 비정규직 비중이 20%를 웃도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노동경직성에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해고와 임금 조정이 유연한 영국은 비정규직 비중이 5.5%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외면했고, 노동개혁은 ‘금기어’로 치부했다. 이전 정부에서 어렵사리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생산성과 괴리된 호봉제로 되돌렸고, 그 대안으로 공약한 직무급제 도입은 없던 일로 만들었다. 저성과자 해고지침도 폐기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정년 추가 연장,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 내놓는 정책마다 하나같이 상위 10%인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노조에 혜택이 돌아가는 것들뿐이다.

임금·근로조건이 월등한 ‘노조 귀족’이 비정규직 등 ‘노동약자’ 위에 군림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풀 길이 없다. 그런 이중구조의 한 단면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한·일 대졸자 임금비교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대졸초임은 양국이 엇비슷한데 대기업 대졸초임은 한국(약 4223만원)이 일본보다 31%나 높다. 대기업 노조들의 강력한 교섭력과 투쟁적 노동운동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로는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노·노 착취’ 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다.

저성장 속에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과잉 노동정책의 대가가 너무도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그런데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내달 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심지어 ‘국회 해산’까지 들먹인다. 이제라도 누가 ‘노동약자’인지 정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나라가 ‘민노총 공화국’인가.